초자연적인 은혜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태복음 5장 41절
주께서 요구하시는 관계는 그분이 우리 안에 초자연적인 역사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압제와 불의를 당해도 그들 마음속에는 조그마한 분노를 품은 흔적도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사역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그 부담은 그 어떤 열정으로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도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인데, 바로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입니다. 주님의 정결케하는 셈에 물레방아를 통과하면 오직 한 가지 목적만 남습니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나를 보내소서." 다른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만은 결코 희미해져서는 안 됩니다.
산상수훈은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성향을 바꾸시고 주님 자신의 성향을 넣어주실 때 내 안에서 발생할 일들을 명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수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초자연적으로 제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끈질긴 노력으로는 분명히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시작하며 우리는 이 하나님의 강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택하심에 불순종할 수는 있지만 우리 스스로 제자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 이끌리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에 의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분의 역사가 어디서 시작하는지 그 자취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제자 하나를 만드시는 과정은 초자연적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역량에 따라 제자를 세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라고 부탁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일들만 하라고 부탁하십니다. 그 일을 하려고 할 때 십자가는 언제나 따라올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9월 25일 초자연적인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또 하나의 'Just go!'
어제 주제의 말씀을 저스트 고라고 잡았는데, 오늘 또 하나의 저스트 고. 오늘 묵상 제목에는 어제와 동일하게 원문에 보면 Go라고 하는 단어가 들어있습니다. 원문의 뜻을 살렸더라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오늘 묵상에서 동일합니다. 어제는 사역의 준비를 위한 고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즉각적인 순종이 사역의 시작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원문의 제목이 The 'go of relationship'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른 관계를 위해 가라' 이렇게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인 산상수훈은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가르침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야 따를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 본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챔버스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압제와 불의를 당해도 그들 마음속에는 조그마한 분노를 품은 흔적도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사역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그 부담은 그 어떤 열정으로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근거합니다. 챔버스는 이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어긋난 관계 속에서는 그 어떤 열정도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몇 번 언급했던 그런 문장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할 수 없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이 대신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는데 자연적 본성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십 리를 기꺼이 가겠습니까? 억지로 가자고 하는 것이 우리를 압제하는 자일 수도 있고, 우리를 학대하며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터무니없는 부탁을 들었을 때 분노가 당연하게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 부당한 요구에 호의를 더해 베풀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일은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산상수훈 말씀을 들을 때 너무 이상적이라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연적 본성으로 그 말씀을 대한다면 그 말은 옳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성향을 바꾸셔서 그분의 마음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함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딱 한 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택하심은 전적으로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단지 그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있음을 알 뿐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 연관 지어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문장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택하심에 불순종할 수는 있지만 우리 스스로 제자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드리죠. 우리는 주님의 택하심에 불순종할 수는 있지만 우리 스스로 제자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
바른 관계를 위해 go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제자로 부르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인 부르심, 주권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부르심에 대하여 주님은 전적으로 자발적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강압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저 just go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하며 우리의 능력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진 역량에 근거해 제자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의 은혜와 부르심에 대한 순종으로만 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탁하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명령하실 뿐이고 우리는 순종의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부르심에는 필연적으로 십자가가 따라옵니다. 오 리를 가자는 요구에 십 리를 가는 것은 분명히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십자가를 지기 위해 go 할 때 주님은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놀라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면 just go 하십시오.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의 책, [팬인가 제자인가]에 보면 이러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보든이라는 사람이죠.
윌리엄 보든은 오늘날로 따지면 수십억 달러 가치에 달하는 낙농회사의 상속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예일대학교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죠. 윌리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여행을 권합니다. 그리하여 유럽과 아시아 중동을 여행하던 중 복음이 닿지 않은 곳으로 찾아가라는 부르심을 느끼죠.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위해 선교의 삶을 바치겠다는 편지를 부모에게 보냈고, 그러고 나서 자신의 성경책에 문장 하나를 씁니다.
"남김없이."(No Reserve)
윌리엄은 예수님을 따르려면 온전한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예일대학에 들어간 그는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고 한 친구와 함께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합니다. 윌리엄 보든이 4학년이 되었을 때 그런 모임이 예일 주변에 천여 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졸업 후 그는 성경책 뒷면에 다시 한 문장을 씁니다.
"후퇴 없이."(No Retreats)
그는 세계선교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중국의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중국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아랍어를 배우고 이슬람 지역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이집트로 건너갑니다. 그런데 그만 그곳에서 척수막염에 걸리고 말았죠 그리고 1달 뒤 25살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카이로에 묻혔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성경책 속에 세 개의 마지막 문장이 발견되는데 그것이 "후회 없이."(No Regrets)
그는 남김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 살았고 25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제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분노의 흔적을 지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지금 순종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주저하지 말고 고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어제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시는 강력한 도전이 있습니다. 지금 go, 가라고 하시는 말씀, 지금 행하라고 하시는 말씀, 후회 없이, 남김없이, 후퇴 없이,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주께서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즉각적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우리들의 삶에 남길 수 있는 한마디, "내가 이렇게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고했습니다." 순종의 흔적을 남기는 하루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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