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신 아픔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의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누가복음 9장 57절
이 사람에 대한 주님의 태도는 그를 좌절시킬 정도로 엄하셨습니다. 주께서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왜 놓치셨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굳이 그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하시고 그를 실망시켜 보내실 필요는 없잖아요." 절대 주님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은 더이상 아프고 상처받을 것이 없을 때까지 우리에게 아픔과 상처를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결국 우리를 망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엄하게 다루십니다. 주님의 대답은 이 상황 가운데 변덕스럽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아는 지식에 근거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당신에게 아픔을 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면, 당신은 주께서 당신을 죽기까지 아프게 할 정도로 무언가 제거해야 할 것이 있다고 확신해도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 9:58). 이 말씀은 즐거움으로 예수님을 섬기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러한 가혹한 거절은 우리 주님, 나 자신, 그리고 좌절된 꿈만 남깁니다. "수많은 일들이 오고 가되 너의 좌표는 나와의 관계여야 한다. 내 머리를 둘 곳이 없다."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눅 9:59). 이 사람은 예수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 대신에 가족들에게 민감한 충성을 앞세워 예수님을 맨 끝에 둡니다. 충성에 갈등이 생길 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십시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눅 9:61). 이 사람은 가려는 마음은 강렬한데 결국 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엄한 부르심은 작별 인사를 할 여유도 주지 않습니다. 작별인사는 그리스도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일단 오면, 출발하기 시작하고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9월 27일 주님이 주신 아픔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아픔을 주시는 이유
오늘 묵상도 이전 3번의 말씀과 동일하게 go 시리즈로 묵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전 말씀 준비를 위해 가라, 바른 관계를 위해 가라. 이 말씀과 더불어 오늘은 '포기하기 위해 가라' 그런 말씀의 묵상입니다.
누가복음 9장 57절 길 가실 때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그런데 이어진 말씀 주님의 말씀은 그의 의지를 좌절시킬 만큼 혹독한 말씀이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불이 있고 공중에 세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그리고는 아버지를 장사하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과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겠다는 사람에게 "너희는 하늘나라의 합당치 않다"라고 차갑게 말씀하셨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냉담하게 말씀하셔서 주님을 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실 필요가 있었는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픔을 주시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엄격하게 다루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분명하게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령이 당신에게 아픔을 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면, 당신은 주께서 당신을 죽기까지 아프게 할 정도로 뭔가 제거해야 할 것이 있다고 확신해도 됩니다. 챔버스의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아프게 다루신다면 우리 안에 제거해야 할 무언가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주 낭만적인 생각입니다. 주님을 따라 동행한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온전히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발목을 잡는 모든 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여기서 제가 '잘라낸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잘라내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중요한 순간을 만날 때마다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적 기억이 났습니다. 당시 저희 아버님은 군목으로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군목 기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체험하고 그 당시 헌신을 다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집 밖으로 나가셔서 집에 가지고 계시던 낚싯대와 바둑판을 쪼개버리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희 아버님을 그 당시에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로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낭만이 아니라는 말은 주님을 따르기로 할 때 가서 잘라내고 포기할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주님께서 우리를 아프게 다루실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속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고 계시는 분입니다.
엄격한 부르심
주님께서 오늘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 중 3가지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는 말은 즐겁게 주님을 따르려던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였죠. 예수님을 따라 살면서 좋은 집에서 살고, 여유를 즐기고 취미생활도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이지, 다른 어떤 것도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 아닐까요? 주님을 따르면서 좋은 집을 사는 것, 우리 육신이 몸담을 곳을 찾는 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시작부터 주님과의 관계, 주님을 따르는 이유를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했나요? 오늘 여러분들이 이 물음에 답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말한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어쩌면 주님의 마음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고, 아버지와 가족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챔버스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 대신에 가족들에게 민감한 충성을 앞세워 예수님을 맨 끝에 둡니다. 충성의 갈등이 생길 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십시오.
우리가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사역을 핑계로 가족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길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가족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기에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어쩌면 이쪽저쪽을 다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우리들에게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어디에 충성하고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저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저는 혼자 교문을 나서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부흥회 강사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교인 가정 장례에 참석하시느라 졸업식에 오시지 못했어요. 아무도 오지 않은 졸업식, 혼자 교정을 나오며 많이 슬펐지만 우리 부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때는 섭섭한 마음이 있었지만 평생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이 제 안에 훨씬 크게,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마 지금 제가 목회자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그런 분명한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세 번째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따르기 전에 해결할 일이 몇 가지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사람은 주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뒤에 주님을 따른다면 과연 언제 따를 수 있을까요? 우리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는 완전하게 준비된 상황이 있을까요?
주님의 엄격한 부르심은 작별 인사할 여유도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확실할 때는 작별의 여지도 없습니다. 부르심은 따라가는 것이지, 멈춰 섰다 다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주님의 부르심은 엄격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셨다면, 지금 당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아직 마음속에서 핑계 대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그 일이 주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할 때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때 때로 주님은 우리들에게 상처를 주시기도 합니다. 때로 우리들에게 큰 아픔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며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가기에 우리들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참 많이 있고, 돌보아야 될 사람들이 많이, 우리가 원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주님을 따르는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한다면 무엇인지, 오늘 우리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오늘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의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고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하루가 되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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