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자연적인 부르심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손길을 잊기 쉽습니다. 만일 당신이 어디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정말로 부르심을 받았는가에 대해 의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렇게 오지 않습니다. 훨씬 더 초자연적입니다. 한 사람의 삶 가운데서 주의 부르심을 깨닫는 것은 갑작스러운 천둥 번개나 점차적으로 밝아지는 새벽빛같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오든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무언가 초자연적인 흐름과 함께 오며 아주 분명한 희열이 동반됩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생각하지도 않았던 깜짝 놀랄 부르심이 당신의 삶을 휘어잡는 것을 의식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 및 성화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당신이 거룩하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자신에게 맡겨진 피할 수 없는 사명이라고 설명합니다.
만일 당신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한 초자연적 부르심을 무시하거나 망각해 왔다면 당신의 상황들을 잘 점검해 보십시오. 어떤 영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당신의 생각이나 특별한 능력을 앞세우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십시오. 바울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으며 이를 위한 그의 노력을 막을 것이 없었습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역경이 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역을 위한 모든 수고는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낼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목적에 순응하면 주님은 당신의 의식세계뿐만 아니라 당신의 생명의 깊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조화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9월 29일 초자연적인 부르심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부르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늘과 내일 묵상은 부르심을 주제로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 내일은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이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로 삼으시기 위함임을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부르심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손길은 초자연적입니다. 초자연적이란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판단을 초월하는 부르심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가 부르심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부르심인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챔버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 가운데서 주의 부르심을 깨닫는 것은 갑작스러운 천둥 번개나 점차적으로 밝아지는 새벽빛같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오든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뭔가 초자연적인 흐름과 함께 오며 아주 분명한 희열이 동반됩니다.
부르심의 이러한 특징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에 자주 등장하는 요한복음 15장 16절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는 구절과 관계가 있습니다. 부르심이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방법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전, 그 신비로운 빛과 북소리]라는 책에서 부르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부르심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인 방법은 없다. 부르심에 대한 유일한 확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얻어진다 오직 당신의 마음속에 거하는 성령만이 부르심을 확증해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리석은 사람, 약한 사람, 멸시받는 사람 등, '부정적 자질의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모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80세의 늙은 목자였다. 다윗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양치는 어린 소년이었고, 요셉은 노예였으며, 다니엘은 포로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요한 인물들을 부르실 때는 부정적인 측면까지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많은 예들을 발견한다.
챔버스는 계속해서 부르심과 구원 혹은 성화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택한 받은 것이 아니라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으로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소명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부르심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우리를 사용하시는 방법 역시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속합니다. 부르심에는 순종만이 답입니다.
부득불
이러한 부르심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죠.
고린도전서 9장 16절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이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으로 사도 바울에게 임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원했던 것이 아니죠. 여기에서 우리가 구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이 강권적으로 이끌어 가시거나 우리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택함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요, 그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우리 자유 의지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부득불이라는 말이 자유 의지에 반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후에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를 알았습니다. 택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서 버림받는 것보다 더 큰 화가 없었던 것이죠. 구원받은 사람에게 가장 큰 은혜는 합당하게 쓰임 받는 것이요. 가장 큰 형벌은 쓰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이에게 자유 의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는 의미 있는 삶을 향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은 부득불 할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 개인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챔버스는 말합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역경이 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역을 위한 모든 수고는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낼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부르심에 대해 어떻게 자유 의지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낼 수도 있고 부르심을 외면해 버림받는 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에 순종할 때 하나님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나를 따르라]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 뒤를 따라오너라! 이것이 전부다.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 그것은 아예 내용이 없는 일이다. 그것은 실현이 중요해 보이는 인생 계획도 아니고, 해야 할 목표나 이상도 아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이 무언가를 걸거나 자기 자신을 걸어야 할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의도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부름 받은 자는 특별히 값진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부르심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의 뒤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복종 자체는 최소한의 가치도 부여받지 못한다. 그것 자체는 완전히 무의미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머문다. 그러므로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만 매이는 것, 부르시는 분의 은혜를 통해 모든 율법을 깨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 부르심은 은혜로운 부르심이자 은혜로운 명령이다. 그것은 율법과 복음의 적대관계를 초월하는 부르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부르시고, 제자는 뒤를 따른다. 그것은 은혜와 명령이 하나가 된 부르심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당신의 삶에 '부득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분명한 사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부르시는지, 왜 부르셨는지, 왜 나를 택하셨는지 우리가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을 때에 우리들이 순종하며 따라갈 것인지, 우리가 그것을 거부할 것인지, 그 자유 의지가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영광에 우리가 참여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그 영광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의 계획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부득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열정이 솟아나게 하여 주옵시고 오늘 부르심에 합당한 주님을 따르는 순종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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