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한복음 10장 3절


너무나 슬퍼서 주님을 못 알아볼 때(요 20:15) :  모든 교리를 다 알고도 여전히 예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교리의 지식이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보다 앞서면 그 사람의 영혼은 위험합니다. 왜 마리아가 울고 있습니까? 마리아에게 교리라는 것은 그녀의 신발 밑에 있는 풀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마리아를 교리적으로 조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녀를 조롱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녀로부터 일곱 귀신을 쫓아낸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이 베푸신 축복마저 예수님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 서신 것을 보나 그분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요 20:13~16). 그러나 그녀가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분이 바로 그녀에게 말씀하셨던 과거의 그 예수님인 줄을 깨닫고 "선생님!"이라고 외쳤습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의심할 때 (요 20:27) : 예수님에 대해 무언가 의심한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경험했지만 나는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심한 적은 없습니까?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의심했습니다.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는 예수님의 인격적인 만지심이 필요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주님의 만지심이 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주의 만지심이 임했을 때 이는 형언할 수 없이 귀한 것입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이기심 때문에 주님을 부인할 때(요 21:15~17) :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맹세와 저주로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홀로 만나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사적으로 회복시키시고 그 후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사귐의 역사가 있습니까? 제자도의 한 가지 증표는 주님과의 친밀한 연결, 곧 그 어떤 것도 흔들릴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8월 16일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대하여 나누어 보겠습니다. 오늘 묵상은 주님께서 많이 사랑하셨던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셨습니다. 너무 많이 알고 계셔서 사랑하기가 참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들을 아는 것에도 그치지 않고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바로 그런 주님의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보겠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주님을 못 알아볼 때

요한복음 20장 1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어디에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를 주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교리적 지식으로 마리아를 조롱했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를 사랑하셨고 고쳐주셨습니다. 마리아에게 교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지식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도 주님의 죽음 앞에서 떨었으며 너무 슬픈 나머지 부활하신 주님이 눈앞에 나타나셨지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그녀를 부르셨을 때, 그 음성을 깨달았을 때 마리아는 "주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챔버스의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슬픔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릴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마주하고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혼란스러운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름을 부르시고 과거의 놀라운 경험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러니 슬픔 가운데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단지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우리를 부르실 때 용기 있게 외치십시오. "주님!"이라고 말입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의심할 때

두 번째 위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의심하던 제자 도마에게 찾아오신 주님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는 왜 주님을 의심했을까요? 모든 제자들이 있던 자리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으나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했던 자리에 도마 홀로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더 고집스럽게 말했는지 모릅니다. 요한복음 20장 25절에 보니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하죠.
우리는 도마가 얼마나 고집스럽게 어깃장을 놓고 있는지 압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다른 제자들 역시 많이 답답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비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남들이 다 있었던 그 자리에 너는 왜 없었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마를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특별한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도마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져봐야 믿겠다면 네 손으로 직접 만져보아라'라고 말입니다.
의심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주님을 가장 확실하게 아는 통로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도마에게 홀연히 찾아오신 주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고집스러운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거나 누군가의 완고함에 대하여 비난하지 마십시오. 단지 주님에게 필요한 것은 기대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찾아오실 때 우리도 도마처럼 고백할 것입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말입니다.

이기심 때문에 주님을 부인할 때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죠.
부활하신 주님이 옛 생활로 돌아가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주님의 수제자로 불렸지만 예수님을 심판하던 법정 뜰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묵상해서 이기심, 영어로 selfish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죠. 주님께서 고통당하시던 현장에서 자신의 고통만 모면하라고 주님을 부인했으니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입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그런 그에게 찾아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회복을 경험하며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세 사람 모두에게 부끄러운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모두 개인적으로 만나 친밀함 가운데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부끄러운 과거로 인해 침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인적 친밀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사귐의 역사가 있습니까? 제자도의 한 가지 증편은 주님과의 친밀한 연결, 곧 그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으로 인해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주님을 배신하거나 스스로 실족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마다 찾아오셨던 주님을 생각해 봅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여기 등장하는 세 사람 중에 나의 모습은 없는가를 찾아보게 됩니다.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었으나 주님과 동행했던 과거가 있었으나 슬픔 가운데 주님을 잊고 있었던 마리아, 주님과 그렇게 동행하면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던 도마,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장담했던 그러나 주님을 부인하며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베드로. 이 어떤 모습 가운데도 주님은 찾아오셔서 그들을 만나주셨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소망이 됩니다. 어떤 우리의 모습에도 다시 찾아와 우리를 만나 주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들에게 친밀하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다시 한번 고백하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게 하여 주옵시고 다시 한번 주와 동행하는 그 길에 서서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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