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
성령의 음성은 미풍처럼 부드러워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통 가운데 살지 않으면 결코 그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가책은 가장 부드럽게 오기 때문에 그분의 음성을 감지할 만큼 예민하지 않으면, 당신은 성령을 소멸할 것이고 영적 생활에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성령의 가책은 언제나 잔잔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오는 작은 소리이기에, 오직 깨어있는 성도들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간증을 할 때 "구원받은 지가 정말로 꽤 오래되었구나"라고 말하며 과거를 되돌아보아야 한다면 주의하십시오. 당신이 빛 가운데 걸으면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현재 하나님과 나누는 놀라운 교제 속으로 묻혀버렸기 때문입니다. 빛에서 벗어나면 당신은 감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과거의 추억 속에 살게 됩니다. 따라서 당신의 간증은 딱딱한 금속음을 내게 됩니다. 과거에 빛 가운데 걸었을 때의 경험만을 그리워하면서 현재 빛 가운데 걷는 것을 거절하려는 경향을 주의하십시오. 성령께서 뭔가 가책하시면 당장 멈추어 서서 그것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을 거스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가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그 위기를 거의 지나갔지만 완전히 끝내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위기를 다시 조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덜 의식하게 될 것이고. 이때도 순종하지 않을 경우 더 큰 부끄러움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계속 성령을 거스르면 위기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시간이 올 것이고, 이때가 되면 당신은 성령님을 소멸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위기를 통과하면 당신의 마음과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흘러 넘 칠 것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가슴 아프게 하는 것들에 대해 결코 어떠한 연민도 갖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사라져야 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를 아프게 하셔야만 합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8월 13일 성령의 음성을 들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서 사도바울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소멸하다라고 하는 말에 영어 단어가 굉장히 어려운 말인데 quench라는 말인데요. '불을 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종 성령님을 불로 비유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불을 우리가 꺼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성령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은 미풍처럼 부드러워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통 가운데 살지 않으면 결코 그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통해 성령님의 임재를 가장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은 예민하게 준비된 사람들에게 느껴지지 무딘 양심에서는 조용한 성령님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책 [성령론]에 나오는 글입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 10:3-4)
신뢰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께 확신을 두는 것이다. 만일 상황이 다 이해된다면 신뢰란 필요 없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그분이 어디로 가시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간다.
주님의 음성에는 자기실현이나 죄의 음조가 없고 오직 성령의 음조가 있다. 주님의 음성은 '세미한 음성'으로서 근본적으로 단순하며 다른 음성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주님은 바람이나 지진, 불에도 계시지 않고 오직 미세하고 조용한 음성 가운데 계신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인격적인 손길을 느꼈다면 우리는 성령 충만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성령의 가책은 언제나 잔잔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찾아옵니다. 예민하게 깨어있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깨어 있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챔버스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간증을 할 때 '구원받은 지가 정말로 꽤 오래되었구나'라고 말하며 과거를 되돌아보아야 한다면 주의하십시오. 당신이 빛 가운데 걸으면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조금 깊이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거를 회상하나요? 현재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던가요? 현재가 진취적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영광이 늘 이야깃거리로 등장합니다. 지금 성령님과 동행하며 앞으로도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과거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더 생생하게 성령님과 봉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붙들려 있지 않다는 증거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하시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실 때 곧바로 멈추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이 아무리 휘황찬란해도 지금 여기 계시는 성령님을 소멸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성령께서 마음의 가책을 주실 때는 당장 멈추고 교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성령과 동행하기
오늘 묵상 두 번째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먼저 챔버스의 글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가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그 위기를 거의 지나갔지만 완전히 끝내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위기를 다시 조성하실 것입니다. 만일 계속 성령을 거스르면 위기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시간이 올 것이고 이때가 되면 당신은 성령님을 소멸해 버릴 것입니다. 여기에서 위기가 일상적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사건과 장소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던 것과 같은 그런 상황이죠. 예수님께선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승리하시고 마귀를 굴복시키셨습니다. 이때 시험은 끝났고 성령께서 역사하셨다는 증거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 성령님께 민감하지 않으면 이 시험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묵상 원문에서 go through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묵상의 위기를 지날 때라는 말을 저는 '위기를 통과할 때'로 바꾸어 봤습니다. 같은 뜻이지만 조금 다른 뉘앙스가 있죠. 하나님께서 위기를 허락하실 때는 대충 거기에서 머무르는 것,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통과하라는 것이죠. 이러한 위기와 시험을 완전히 통과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전보다 이 위기를 심각하거나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성령님에 대하여 더 이상 민감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죠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 민감하지 않아서 이런 위기를 통과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에게 시험과 위기를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안의 성령이 소멸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피해야 할 시험이 있고, 이겨야 할 시험이 있구나! 하나님께서 위기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실 때가 성명님과 동행할 수 있는 철호의 기회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 버려야 할 것과 붙들어야 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 분별을 통하여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위기 가운데로 인도하실 때에는 어떤 연민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 성령님을 향한 찬양이 흘러나오도록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오늘 묵상의 마지막 문장이 좋습니다.
그대로 한 줄 노트로 이렇게 묵상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사라져야 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를 아프게 하셔야만 합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위기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위기를 '통과'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한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일상 가운데 성령님의 음성을 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민감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그렇게 기도합니다. '성령님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민감하게 하요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고통 가운데 지나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민감함으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사람들, 그저 시험 가운데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시험을 통과함으로 더욱더 민감하게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며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오늘도 우리를 붙잡아 주실 성령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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