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삶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당신의 삶을 분열시키는 것이 생길 때마다 당장 주님께 나아와 안식을 주실 것을 구하십시오. 평안을 깨는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마십시오. 평안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을 당하지 말고 그 평안을 깨는 대상과 대항해 싸우십시오. "주님, 제 안에 당신만을 의식하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자아의식은 사라지고 주님께서 당신의 전부가 되실 것입니다. 자아의식이 계속되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 이유는, 자아의식은 서서히 자기 연민을 발생시키며 자기 연민은 사탄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쎄, 그들이 나를 오해한 것이지. 그들은 내게 사과해야 해. 그 점은 내가 분명하게 해야 할 것 같아."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서 당신에게 그리스도 의식을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당신의 온전함이 완벽해질 때까지 주께서 당신을 붙드실 것입니다.
온전한 삶은 어린아이 같은 삶입니다. 내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정도라면 나는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건강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은 병든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자신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우리는 묻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당신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의식하기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평안한 마음 가운데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상식적인 방법으로 자아의식을 극복하려 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자아의식을 개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그리스도 의식이 자아의식의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곳마다 주님께서는 완성된 사역에 안식, 곧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는 안식을 허락하십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8월 20일 온전한 삶이란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온전한 삶을 위하여

오늘 묵상본문은 어제와 동일합니다. 어제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자아의식'이라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분열을 치유하는 최고의 방법은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임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상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 감으로 인하여 가지는 상태, 온전함 completeness에 대하여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평화를 깨는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고 강력하게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주님, 제 안에 당신만을 의식하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자아의식은 사라지고 주님께서 당신의 전부가 되실 것입니다. 자아의식이 계속되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 이유는 자아의식은 서서히 자기 연민을 발생시키며 자기 연민은 사탄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자신을 의식하면 스스로의 가치를 가늠하게 됩니다. 챔버스는 자아의식이 계속될 때 자기 연민이 발생하니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매기는 분은 인생의 전문가이신 하나님이며 우리 스스로 가치를 폄하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일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재욱 목사가 쓴 [보통의 질문들] 그 책에 나오는 글이 있습니다. 좀 읽어드리죠.
<전당포의 사나이들>이라는 프로그램은 물건을 팔러 온 사람들과 가치를 두고 흥정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물건을 팔러 온 사람들 중 어떤 이는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어떤 이는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건의 의미와 가치를 매기는 것은 결국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의 몫이다.
나의 의미와 가치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자만에 빠지는 사람도 있고 너무 과소평가하여 좌절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내 인생에도, 남의 인생에도 전문가가 아니다. 인생의 전문가는 바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다.
내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인생전문가이신 하나님의 평가로 결정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상상 그 이상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아끼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가치를 매기셨다.
우리들에게 온전한 상태는 무엇일까요? 챔버스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자신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우리는 묻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당신의 뜻입니까?'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현학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지만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공기를 마시고 사는 사람이 산소를 의식하지 못하고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숨 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물고기들은 물에서 나오고서야 물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되죠. 우리 역시 하나님과 멀어지고 나서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헨리 나우엔의 책, [예수의 글]에도 이런 구절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하신 대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되 놀라울 정도로 친밀한 방식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내 안에 한 몸처럼 사신다고 고백할 수 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구약에서 우리 여정에 동행하셨고 신약에서 성육신 하여 우리와 함께 고난당하셨으며, 이제 우리 숨결 속에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호흡한다.
호흡보다 친밀한 교감을 상상할 수 있을까? 호흡은 워낙 몸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숨을 잘 쉬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워낙 긴밀하여 내 호흡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긴밀성을 택하여 우리의 숨결이 되셨다. '영'의 헬라어인 '프뉴마'는 숨결을 뜻한다.
주님과 일치된 삶을 살 때는 굳이 주님의 뜻을 묻지 않아도 평안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꾸 주님의 뜻을 묻기 시작했다면 주님과의 관계가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는 의미이겠지요.
조금 더 나아가 우리의 기도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의식하기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평안한 마음 가운데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양 중에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를 읽어 드리려고 하니까 혹시 여러분들 이 가사를 들으면서 찬양으로 따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세상의 것 의지할 수 없으니
감사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기쁨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어제 묵상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자아의식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장애물입니다. 만일 자아의식을 가지고도 온전한 그리스도 내 삶을 살 수 있다면 더욱 자아의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아의식이 있던 자리에 그리스도의 의식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오로지 주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아도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들에게는 원하는 것, 바라는 것, 기도하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게 많아서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고 우리의 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원하는 것 바라는 것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나에게 평안이요 기쁨이요 만족입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주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오늘 우리들이 그렇게 원하는 것, 바라는 것 없어도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구나.'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주님은나의최고봉 #주나최 #김병삼목사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