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의 대가
웃시아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 6장 1절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걷다 보면 주님께서 종종 우리의 "영웅들을 사라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웅들의 자리에 친히 계시기 위해 그들을 데려가십니다. 이때 우리는 실족하고 쓰러지고 낙심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나에게 마치 하나님처럼 전부였던 사람이 지난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면, 그때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까? 아파 누웠습니까? 낙심되었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보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가 못 보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 성품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 성품의 상태에 따라 계시 여부를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또한 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전에 내 성품 안에는 하나님과 일치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기 시작할 때까지는 나는 일반적으로 내 편견에 따라서만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보기 전에 나는 외적인 사건을 통한 수술이 필요하고 내면은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배우면서 아무것도 안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처음도 하나님이요 둘째도 하나님이며 셋째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온 세상에서 나의 하나님 외에 다른 분이 없습니다.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계속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당신이 정녕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에 따라 사는 것을 그분이 보실 수 있도록 하십시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7월 13일 비전의 대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믿는 것이 사라질 때
오늘 본문 말씀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왕의 죽음은 큰 손실이지만 그로 인해 나라가 망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기일 때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람을 들어 행하시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비전의 대가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비전을 갖기 위해서는 포기하거나 놓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아니, 귀하게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만 새로운 비전을 갖습니다. 오늘 묵상의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걷다 보면 주님께서 종종 우리의 영웅들을 사라지게 하십니다.
여기서 사라지게 하셨다는 말은 죽었다는 의미고, 그렇게 믿었던 영웅들이 죽었다고 해서 역사가 끝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실족하고 쓰러지고 낙심할 수 있죠. 특히 우리가 하나님처럼 여기던,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면 어떻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주님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이야기하는 우리의 영웅들이 사라지는 상황은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할 수도 강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면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독교의 진리]에 나오는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상황은 당신의 믿음을 약하게 하거나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주장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께서 당신을 어디에 두시든지 전적으로 헌신하십시오.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 온 힘을 다해 순종하십시오.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왕좌왕 사는 정신없는 삶 대신 우선순위를 지키며 성실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지켜주시는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주안에 거하면 잠을 자더라도 육적인 충전뿐 아니라 영적인 충전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우리의 믿음의 강함과 약함은 상황이 아닌 '무엇'을 의지하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품이 결정한다
챔버스는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전적으로 성품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성품이 계시 여부를 결정한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의 성품이 준비되어 있을 때 하나님의 계시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준비된 성품은 무엇일까요? 챔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또한 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전에 내 성품 안에는 하나님과 일치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기 시작할 때까지는 나는 일반적으로 내 편견에 따라서만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일치되는 성품은 거듭남과 관계가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하늘나라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삶의 위기가 찾아올 때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이 임하지 않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견해로 세상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올 틈이 없죠. 챔버스는 이런 성품을 가지기 위해 2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조금 어려운 표현이라 제가 인제 설명을 하겠지만, 하나는 '외적인 사건의 치료', 다른 하나는 '내적인 청결'. 이렇게 2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묵상글에는 이 2가지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습니다. 어떤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이해한 대로 조금 설명해 보겠습니다.
외적인 사건이란 어떤 것일까? 특히 우리의 비전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사건들은 언제나 일어나죠. 그것이 외적인 사건입니다. 그때 그것을 사건 자체로 단순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파헤치고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수술하는 것처럼 수술은 아픈 일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회복을 경험합니다. 어쩌면 비전의 대가만큼이나 아프겠지만,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일치된 성품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내적인 정결은 이런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깨끗하고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요? 어쩌면 내적인 정결을 통해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요소들을 제거해 내는 것입니다. 정결은 정결하지 못한 것을 떼어낼 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A.W. 토저는 [하나님을 추구함]에서 이런 태도를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가 좀 읽어드리죠.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를 찾으려는 결단을 해야 하며, 그러고는 단순함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자신을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시고, 지식 있고 똑똑한 자들에게는 깊은 어둠 속으로 감추신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모든 노력을 벗어버리고 어린아이처럼 간사함 없이 솔직하게 나와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의심할 것 없이 하나님은 속히 반응을 보이실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그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을 찾자" 그렇지만 효율적으로 찾자는 나쁜 습관이, 완전한 모습의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지만"이라는 말속에 우리의 무서운 적이 있다. "그렇지만"을 빼어버린다면 곧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분 안에서 우리 생애 전체 동안 비밀히 갈망해 온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토저 목사님은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과 솔직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한 이런저런 이유나 더 좋은 길을 찾기 위한 모든 노력을 제거하는 '그렇지만'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처음도 하나님이요 둘째도 하나님이며 셋째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온 세상에서 나의 하나님 외에 다른 분이 없습니다.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비전은 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기꺼이 비전을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전을 따라 기꺼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보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비전의 대가를 치르면, 우리가 그 비전을 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가까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하나님의 비전을 보기 위해 당신의 삶에서 교정해야 할 성품과 떼어내야 할 정결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살아가는 것,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대가가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희생하지 않고 우리의 잘못들을 내려놓지 않고 정결하지 못한 것을 떼어내지 아니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을 알 수 있다고 착각할 때가 참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희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놓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비전을 알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버려야 할 것 버리게 하시고, 정결하지 못한 것 떼어내게 하셔서 하나님 우리들에게 주시는 선명한 비전을 오늘 바라보며 붙잡고 나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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