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간구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장 26절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도의 힘을 얻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기도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거듭나 성령께서 거하시게 될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간구하십니다. 당신 안에 계신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의식하며 드리는 기도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기도를 찾기 위해서 당신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성령은 중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성전으로서 성도의 몸을 필요로 합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전 6: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실 때 성전 안에서 장사하기 위한 여러 기구들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께서도 당신이 당신의 몸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사고파는 자들을 가차 없이 쫓아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3)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인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를 위해 우리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삶의 부분이 비록 우리 인격성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전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돌보시겠지만, 우리의 의식적인 삶의 영역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기도의 능력
오늘 말씀 역시 원문 제목을 보면 챔버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원문 제목은 제가 이렇게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타의 추정을 불허하는 기도의 능력 영어로 이렇게 되어 있네요. The unrivalled power of prayer
진정한 중보기도의 능력이 무엇인지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은 어제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 우리는 인간 편에서 기도하는 것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우리가 능력 있는 기도를 위해 어떻게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도의 능력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로마서 8장 26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도의 능력이란 무엇일까요?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도의 힘을 얻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기도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이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가 말하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중보 기도를 시작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중보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성령께서는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간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식하는 기도를 넘어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중보 기도의 내용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도의 능력은 우리가 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놀라우신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전에 거하시며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셨던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장사하는 자들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께서도 당신이 당신의 몸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마태복음 21장 13절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성도의 몸이 성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는 자명합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인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주를 위해 우리의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몸이 더럽혀지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실 수 없습니다. 몸이 더럽혀지면 기도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지키면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분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며 책임지실 것입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우리의 몸을 지켜야 많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게로 가서 너와 함께 지내기를 원한다면, 내가 거처할 네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 묵은 누룩을 내버리고(고전5:7), 온 세상과 온갖 죄를 차단하라(출24:18).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처럼 홀로 앉아서 비통한 마음으로 내 죄악을 깊이 생각해 보아라. 사랑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연인을 위해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자리를 준비하며, 여기서 연인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일이고 구원의 은혜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기도의 영역에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해야 할 영역이 우리의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도록 통로가 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임스 패커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참자유는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고 거룩한 삶을 향해 매진하는 자유를 뜻한다. 이 자유는 우리의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동차를 위를 향해 모는 것은 우리의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에는 우리가 그런 역할 아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덕분에 가능해졌다. 신자는 거듭남을 통해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롬 6:18). 아울러 "너의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는 다음 구절이 실천 방법을 알려준다.
이 말씀은 신자의 참된 본성에 어울리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거듭난 본성을 지닌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다.
챔버스의 말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되겠죠.
성령께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돌보시겠지만, 우리의 의식적인 삶의 영역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중보 기도가 능력을 가지려면 중보 기도를 하는 우리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성령이 거하실 수 있는 거룩한 전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며칠 동안 중보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또 고난 가운데 우리가 기도해야 되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중요한 것은 이 기도가 능력이 있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전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을 지키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날 수 있도록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실 수 있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몸을 시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의 몸을 지킬 때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에 이 세상 가운데서 악과 싸워 이기며 성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주님은나의최고봉 #주나최 #김병삼목사님
'주님은 나의 최고봉'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10일| 하나님과의 일치 |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5) | 2024.11.10 |
---|---|
11월 9일|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7) | 2024.11.10 |
11월 7일| 성령 대신에 나서지 마십시오! |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3) | 2024.11.07 |
11월 6일|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7) | 2024.11.06 |
11월 5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4) | 2024.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