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장 24절
주님의 일꾼은 희생적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주님과 구속의 실체에 일치되므로 주께서 일꾼을 통해 계속적으로 생명을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일꾼의 인격이 뛰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니라 일꾼의 삶의 요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체가 다른 사람에게 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역사 속에서의 주님의 삶과 죽음을 선포할 때 우리의 말씀은 희생적인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포된 이 말씀을 주님의 구속의 바탕 위에 사용하셔서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 없는 새 창조를 말씀을 듣는 자들 안에 행하십니다. 만일 예수님에 관한 계시 대신에 사람의 삶 속에 나타난 구속의 결과들을 선포하면 그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새 생명이 아니라 세련된 영적 문화입니다. 이러한 선포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이므로 성령께서 메시지를 증거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때 오직 주님만이 그 진리를 듣는 영혼들 안에서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도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참 대단하군 아주 매력적이야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역사할 기회를 얻겠습니까? 인간적 매력으로 사람을 끄는 것은 복음의 선포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복음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자신의 인격으로 사람을 끌면 그의 호소력은 그의 인격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과 하나가 되면 사람을 끄는 것은 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위험은 언제나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높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만이 드러나는 것
오늘 묵상은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용한 말씀입니다. 사역자라면 사역자의 입장에서 그렇지 않은 분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입장에서 이 묵상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 요점이며 이것의 의미가 원문 제목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희생적 봉사. 그런데 sacramental service라는 말로 되어있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래서 희생적이라고 하는 말이 sacramental의 '성례전적'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가만히 묵상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신 것이 성례전이야말로 희생적인 봉사를 의미하는구나 온전히 자신을 들여 희생하며 사역하는 sacramental service. 이게 바로 희생적 봉사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풀어가려고 합니다.
챔버스가 여러 번 언급한 그리스도의 구속과 일치되는 사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몇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구속이라고 하는 말이 구속 사역 이런 말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말이 좀 어렵습니다.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건 그래서 죄를 대속해 주신 사건 그러니까 당신의 아들을 희생하신 사건이 구속의 사건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시므로 자신을 내어드린 주님의 라는 말이죠.
챔버스는 이러한 사역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일꾼의 인격이 뛰어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니라 일꾼의 삶의 요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체가 다른 사람에게 임한다는 뜻입니다.
뛰어난 인격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실체,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자기를 희생하신 실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유혹에 노출됩니다. 우리의 장점 우리의 능력 그리고 이에 유용한 방법들을 복음의 능력보다 앞세우려고 하는 것이죠. 이러한 시도들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는 사역을 통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는 욕망들을 가지게 됩니다. 챔버스가 늘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관심을 받고 칭찬받는 만큼 그리스도의 구속이 가려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인격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야 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의 형상을 본받아]라는 책에 보면, 이 부분을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 당신의 '마음의 보좌'를 드려라 그러면 주께서 당신을 통해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는 그럴 때 당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인식하게 된다. 인간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이 드러날 때 절대로 착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어떤 특징을 볼 때 그들은 그러한 특징이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고상함과 다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이 닮은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선함은 주님의 '친절'이요. 주님의 인내이며 주님의 '순결'이다. 결코 사람의 것이 아니다. 경건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인간적인 속성이 뒤로 물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성향이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 가운데서 쓰러진 크리스천 리더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훌륭하게 사역을 하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던 사람들이 타락하며 쓰러지는 것이죠. 타락은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사역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자신을 자랑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순수하게 예수님에 관한 진리와 복음을 전파할 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변화시키셨는데 우리의 가진 것을 드러내며 자랑하려 하니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희생적 봉사란 나를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권리를 주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그분의 도구로 사용되도록 나를 내어드릴 때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희생적 봉사는 온전히 주님만이 드러나고 주님만을 높이는 것입니다.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로 쓰임받는 것이 가장 귀함을 계속해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신발털이개로 사용되기를 기꺼이 원하는 마음인 것이죠. 이 부분에서 사역자들은 끊임없는 유혹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평가에 매달리는 것이죠. 사람들의 칭찬에 위로를 받고 사람들의 말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적 매력으로 사람을 끄는 것은 복음에 선포하는 무관하기 때문에 복음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자신의 인격으로 사람을 끌면 그의 호소력은 그의 인격에 있습니다. 그가 주님과 하나가 되면 사람을 끄는 것은 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위험은 언제나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는 데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처절한 고민 속에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며 또 다짐하고 있는 것이죠.
골로새서 1장 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챔버스 역시 사람들에게 청함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이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영광스럽게 대우하려고 할 때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 즉 희생적 봉사임을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 쳤을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이러한 위대한 고민이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고민이 늘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들려야 합니다.
오늘 나의 사역 가운데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인정을 받고 있는가? 저는 그런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치열하게 불꽃같이 자진을 살아왔던 하영조 목사님 그분도 동일한 고민을 하며 사셨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영광'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때는 인간이 영광을 받을 때가 아닙니다. 인간이 높은 자리에 있거나 명예와 성공을 성취했을 때 행복이 오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마땅히 영광을 받으실 분에게 영광을 돌릴 때 옵니다. 인간의 참된 본분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나의 마음속에 자랑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자랑만큼 하나님이 가리워진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우리 사역의 중심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주님과 같은 희생적 봉사가 아니라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유혹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있음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며 우리가 한번 다짐하기를 소원하는 것 하나님 우리의 사역이 끝까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역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사역의 목적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사역 힘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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