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고난에 동참합니까?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베드로전서 4장 13절


당신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전혀 의미 없는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은 당신을 주님께 유익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당신은 어떤 일을 만나도 놀라지 않게 됩니다. "나는 이 사람을 대할 수 없어요." 왜 할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당신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셨는데 당신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보통 사람들의 고난과 다릅니다. 주님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고난받는 그러한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이 되어 있어야 주께서 우리를 다루시면서 무엇을 추구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회피해 왔습니다. 인간들의 쉬운 지름길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고통의 방법으로서 '길고 먼'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야망을 제거하셔도 괜찮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결심을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허락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인도하시는지 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러한 고통들을 허락하시는지 그 당시에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소간 오해 가운데 고난을 지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밝은 장소로 나아왔을 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계셨는데 왜 나는 몰랐을까?"


인생의 질문

인생에서 참 해결되지 않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고난입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묵상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전혀 의미 없는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은 당신을 주님께 유익하게 만듭니다.
오늘 묵상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한조 목사의 [빈들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다람쥐는 저울을 잘 보내기 위해 많은 도토리를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찾아 먹는데 안타깝게도 다람쥐는 자기가 만든 먹이 저장고와 그 속에 있는 먹이를 다 찾지 못한다고 합니다. 도토리로 만든 음식도 먹고 약으로도 사용하지만 도토리를 심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람쥐의 먹이가 되기 위해 먹이 저장고에 숨겨진 도토리는 참 처량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땅에 그냥 떨어진 도토리가 인간이나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썩어서 사라질 즈음인 이듬해 봄 다람쥐가 땅속에 감추어 놓은 도토리에서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도토리와 같은 열매를 맺는 그런 나무들이 열매에서 싹을 틔워서 나무가 되어 다시 열매를 맺기까지는 약 15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반면에 열매를 땅에 묶어서 기억하지 못하는 다람쥐는 10년을 전후해서 삽니다. 그러니까 다람쥐가 묻어 땅속에 있는 도토리에서 싹이 나서 나무로 성장하여 도토리를 맺을 때는 그것을 묻은 다람쥐는 이미 세상에 없다는 것이죠. 도토리는 한 알이 땅속에서 들어갔지만 세월이 흘러 건강한 나무가 되었을 때는 나무에 수천 개 수만 개의 도토리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고난이 힘든 이유는 당하는 고난을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고난들이 있었습니까? 게다가 고난이 유익이라면 지금 우리 인생에 얼마나 복된 일들이 많았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과 기회를 통해 허락하신 것들을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외면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요? 계획대로 되어가는 인생에 과연 어떤 기대감이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만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았던 어거스틴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악도 선용하신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자에게 이 세상은 늘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생의 해답

고난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당하셨던 고난은 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당하셨다는 뜻입니다. 고난이 유익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결된 상태에서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챔버스는 늘 요한복음 15장에 포도나무 비유를 인용하며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다루실 때 주님께 매달려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고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고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라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고난의 동참하고 그것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자명합니다. 챔버스의 글에 의하면
그럼에도 교회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회피해 왔습니다. 인간들의 쉬운 지름길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고통의 방법으로써 '길고 먼' 길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길에만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쉬운 길만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고난에 참여함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좀 더 명확하게 하나님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옳은 길이 쉽거나 어렵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좁은 길이었고 그 길을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좁은 길이 쉽지는 않지만 기꺼이 즐겁게 갈 수 있는 길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좁은 길에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야망을 제거하셔도 괜찮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결심을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고난이라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이해가 아닌 그분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현재의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고난을 지난 후 왜 그렇게 인도하셨는지 깨닫고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소간 오해 가운데 고난을 지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밝은 장소로 나왔을 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호하고 계셨는데 왜 나는 몰랐을까?'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사람에게 고난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통로가 됩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지금 겪는 고난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해와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느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누군가 우리들에게 '당신은 지금 왜 그런 고난을 당하고 있나요?'라고 물을 때 우리는 대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흔쾌히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난의 의미를 알지도 고난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신 것이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이 우리를 유익하게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지든 어떤 고난이 찾아오든 기꺼이 주와 함께 길을 가며 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을 회피하거나 고난에 넘어지는 자들이 아니라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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