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양심을 갖는 습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사도행전 24장 16절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에게 주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속성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형성됩니다. 주의 명령은 어렵지만 우리가 즉시 순종하면 영적인 차원에서 쉬운 것이 됩니다.
양심은 내가 아는 최상의 것에 마음에 초점을 두는 기능으로서, 사람마다 양심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양심은 영혼의 눈으로서 하나님을 향하거나 스스로 최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향합니다. 만일 내가 꾸준하게 하나님을 뵙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내 양심은 항상 하나님의 완전하신 율법을 소개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합니다. 문제는 내가 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양심을 어기지 않고 잘 지내려면 나의 양심이 예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된 상태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상황 가운데 마음의 영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 12:2)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우리를 일깨우십니다. 당신의 귀는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성령의 세미한 속삭임까지 들을 만큼 예민합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 주님은 천둥 같은 음성으로 오지 않으십니다. 주의 음성은 너무나 세미해서 쉽게 무시하게 됩니다. 우리의 양심을 예민하게 하는 것은 내면세계를 언제나 하나님께 열어두는 끊임없는 습관입니다. 만일 내면세계에 시비가 있으면 당장 그 일을 멈추십시오. "내가 왜 이것을 하면 안 되는 거지?"라는 의문을 품으면 당신은 잘못된 길에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말할 때는 절대로 시비를 따져서는 안 됩니다. 헛된 모험을 걸고 하나라도 허락하면 양심을 어긴 일로 인해 하나님과의 내적 교통이 불투명하게 됩니다. 양심에 꺼려지는 것은 무엇이든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내면세계의 시력이 맑게 유지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김병상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5월 13일 선한 양심을 갖는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양심이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습관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원문 제목의 habit라고 하는 말이 들어가 있구요. 총 다섯 가지의 습관입니다. 이전에 나누었던 말씀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첫 번째 확고한 결심으로 첫발을 떼라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자발적이지만 훈련을 통해 유지된다.
세 번째 습관을 우상화하지 마라
그리고 오늘 묵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지체하지 않도록 민감한 양심을 계발하라는 것입니다. 양심에 대하여 챔버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내가 아는 최상의 것에 마음에 초점을 두는 기능으로써 사람마다 양심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양심은 영혼의 손으로 하나님을 향하거나 스스로 최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향합니다.
한동대학교 교목이었던 김형겸 목사가 학부에 썼던 양심에 관한 신한 칼럼이 오늘 묵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양심은 세상의 도덕론자들이나 논하는 것이고. 기독교인에게는 상관없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기독교인은 오히려 더욱더 예민한 양심을 갖고 사는 자들이다. 바울은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면서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다'고 지적한다(딤전 1:19).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선한 양심(The good conscidence)'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경외(경외) 아래에 있는 양심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빛의 가이드(guide)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양심이다.
'선한 양심'은 사람을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으로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기독교 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의 대 숙제는 어떻게 '나 중심'의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붙잡느냐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양심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 영혼의 눈이 하나님을 향한 채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영혼의 최고 상태에서 양심은 우리에게 완전한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를 소개합니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지시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양심의 지시에 순종할 것인가이죠.
디모데전서 1장 19절 새 번역에 보면 사도 바울은 양심에 대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신앙생활에 파선(파선)을 당하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기준보다 하나님 앞에서 훨씬 더 민감한 양심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양심을 지키려면
양심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양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양심을 어기지 않고 잘 지내려면 나의 양심이 예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챔버스의 생각은 그가 줄곧 붙잡고 있는 신앙의 기둥과도 같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 것이며, 어떻게 이 관계가 우리를 영적으로 예민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예민한 상태에서 양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된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때 우리가 양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생각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일치된 상태에서 우리 영은 어떤 상황에서도 새롭습니다. 여기서 새롭다는 말은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신선하게 대응한다는 뜻입니다.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우리에게 로마서 12장 2절의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성령의 세미한 속삭임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성령은 언제나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우리를 일깨우십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천둥처럼 오지 않고, 아주 세미하게 들리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무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가 언제인가요? 세상의 걱정과 근심으로 마음이 번민할 때나 세상의 소리들이 주변에서 시끄럽게 들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주님 앞에 마주 설 때 주님은 아주 작은 음성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며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습관 중 네 번째 묵상입니다. 그리고 선한 양심은 갖는 습관에 대하여 챔버스가 말합니다.
우리의 양심을 예민하게 하는 것은 내면세계를 언제나 하나님께 열어두는 끊임없는 습관입니다.
우리 내면을 하나님께 열어놓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내면에서 하나님과 시비거리가 생겼을 때 원문에 보면 시비를 디베이트라고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과 어떤 의견의 불일치로 인하여 논쟁이 일어났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왜 내가 이것을 하면 안 되지?'라는 의문이 들고 내적으로 시비가 일어난다면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민한 양심을 통해 말씀하실 때는 시비를 따지면 안 됩니다. 디베이트, 하나님과 논쟁하지 마십시오. 혹시 우리가 이 양심의 소리에 불순종해,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내적 교통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니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려놓고 우리의 내적 비전이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양심을 지키는 습관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예민하게 하며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단호하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인터넷 블로그에 어떤 크리스천이 양심에 관해 모아놓은 글 가운데 이런 것이 있더군요.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당나귀처럼 귀를 세우고, 소처럼 묵묵히,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며,
진지하게 생을 살면서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강제로서가 아닌 인격적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양심을 지키는 것은 신앙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일이며, 보이지 않지만 주어진 비전을 이루는 힘이다.
오늘을 살아낼 묵상질문
나의 양심과 하나님 사이에 시비거리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가 선한 양심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때때로 우리들이 양심에 거리끼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 앞에 성령님께 민감하지 못하고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아니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민감하지 못할 때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욕망적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여 주셔서 오늘 우리가 간절히 비옵나니, 주님 앞에서 선한 양심 가지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이 세상의 분주함 가운데서 세미하게 우리의 양심을 두드리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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