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알았더라면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누가복음 19장 42절


예수님께서는 승리의 기세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성은 예수님으로 인해 술렁거렸습니다. 그곳에는 이상한 우상 곧 바리새인들의 교만이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매우 종교적이었고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아주 의로웠습니다. 그러나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최근 나의 삶에서 나의 눈을 막고 흐리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이상한 우상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상은 멀리하고 싶은 끔찍한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서 나를 휘어잡는 성향입니다. 여러 번 하나님께서는 나로 이 우상을 대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그 우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으로 인한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여전히 나 자신은 우상에게 빠져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음의 거리낌이 전혀 없는 그 무언가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정말로 끔찍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아무 방해 없이 찾아오시는 장소에서도 우상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큰 죄를 쌓는 것입니다.
"너도 알았더라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눈물을 가지고 우리 마음속에 직접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가리워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십니다. "지금 그것들은 내 눈에 감추어졌느니라." 왜냐하면 그 죄성이 끝까지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라면•••" 하는 후회는 얼마나 끝없이 슬픈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닫힌 문은 다시 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문들을 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닫혀지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가 닫은 문들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더러움에 양보하지 말았어야 할 귀한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과거를 기억나게 하실 때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기억이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기억은 꾸짖음과 징계와 슬픔을 사용해 하나님의 수종을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랬더라면" 하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통해 멋진 미래를 펼쳐주십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4월 3일 너도 알았더라면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이상한 우상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승리의 왕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왕으로 생각하는 이상한 우상, 즉 교만에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이는 의로움을 성경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칠한 무덤은 겉으로는 번지르하지만 속은 썩어서 냄새가 나는 무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눈을 가린 우상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여 주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우상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상은 멀리하고 싶은 끔찍한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서 나를 휘어잡는 성향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마음속에 우상이라는 이미지는 때로 기괴한 형상이나 타 종교의 상징물 정도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챔버스가 경험했던 우상은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님이 아닌 것에 자신을 내어주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게 하는 어떤 것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려야 하는데, 하나님께 양도하지 못하게 했던 그것,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우상은 끔찍한 모습을 한 괴물이기보다는 우리 안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양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감사합니다.

안타까움

오늘 말씀의 제목이 너도 알았더라면입니다. 표현 그대로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우상에 대한 경고는 우리 심령에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눈물 어린 경고입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조금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자리에서 바리새인들이 주님과 제자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9장 42절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그들은 평화의 왕으로 우시는 주님을 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고백하지 못했을까요? 이것은 단순히 무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께 끝까지 자신을 양도하지 않는 완악함을 주님이 보신 것이죠.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상으로 눈이 가려져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타까움이 아직 절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입니다. 챔버스가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한번 살펴보고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닫힌 문은 다시 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문들을 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닫혀지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가 닫은 문들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과거를 기억나게 하실 때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전에 묵상글에서 함께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실 때 부끄러움과 기쁨은 함께 온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생각나게 하실 때 죄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하지만 그 부끄러움이 크면 클수록 기쁨도 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과거 실수를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를 꾸짖으시고 슬픔을 느끼게 하실 때는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기에 우상 숭배했던 자신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을 보면 참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 놓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미시간의 애나버라고 하는 도시에 있는 뉴 프로덕 워스라고 하는 실패박물관입니다. 이 실패박물관에는 세계에서 수집한 10만여 점의 실패 상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실패 상품들 중의 하나가 연기 나지 않는 담배, 투명한 캡시콜라, 아이를 위한 스프레이 치약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작품들이 왜 여기에 진열되어 있을까요? 제가 여기서 답을 말하는 것보다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생각하지 못하는 분이 있을까 봐 제가 조금 설명을 할까요? 연기 나지 않는 담배가 왜 실패했을까요? 담배 피는 사람들은 연기가 좋아서 피는 거죠. 투명한 캡시콜라 캡시콜라 하면 까매야 되는데 투명하게 만들었으니, 아이를 위한 스프레이 치약 참 편할 것 같은데 장난치는 아이들에게 그것이 그렇게 좋은 상품이 되지 않았다는 거죠.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많은 기업이 실패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실패한 까닭을 모르고 새로운 제품만을 내놓기 위해 몰두한다면 또 다른 실패를 저지를 것이니 말입니다. 실패는 창피한 것이지만 실패의 이유를 알면 또 다른 창피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쉬움은 절대로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픈 기억을 통해 멋진 미래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도 알았더라면' 이 말은 주님의 안타까움을, 그리고 우리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이 묻어나는 말입니다.
어떤 우상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하게 했을지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 양도하지 못한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할 기회의 문이 닫혔을지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닫으신 문은 열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해 닫혔던 문들은 다시 여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아쉬움이 우리로 하여금 멋진 미래를 꿈꾸게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우상 숭배로 인해 닫힌 문 때문에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기회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질문

당신의 신앙에서 실패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기도하겠습니다.
제자들과 때로 바리새인들, 예수님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주님이 안타까움으로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너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혹시 이 말씀이 우리를 양해하시는 말씀은 아닐까요? '네가 진리를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런데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것 우리 속에 가지고 있었던 우상으로 인하여 우리가 망가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우리에게 기회의 문을 여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것이 부끄러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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