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대항하는 첫걸음

일어나라 함께 가자
마태복음 26장 46절


제자들은 깨어있어야 할 때 깊은 잠이 들었고 나중에 이를 알게 되었을 때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미 저질러진 일로 인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느낌은 우리를 절망케 합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다 끝났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소용없어."
우리는 자신의 절망이 예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사실 절망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엄청난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쉽게 절망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자느냐.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구나. 네가 다시 바꿀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일어나라. 함께 다음 단계로 가자." 과거로 하여금 잠이 들게 하십시오. 그러나 과거가 예수님의 품 안에서 잠들게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다가오는 미래로 들어가십시오.
우리는 누구나 절망의 경험이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쉽게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정말로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어야 할 그때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친히 찾아오셔서 영적인 시발점을 허락하십니다.
"일어나라. 다음 단계로 가자."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힘을 얻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주의 구속을 바탕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실패의식이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매일 만나 365 오늘은 2월 18일, 절망에 대항하는 첫걸음이라고 하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도 두 개의 대지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절망의 이유

오늘 본문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갯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과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잠들어 있었던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챔버스는 본문을 통해 절망의 이유를 찾습니다. 즉, 깨어 있어야 할 시간에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던 것이 제자들에게 절망의 원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절박한 기도 소리를 듣고 함께 기도해야 할 제자들이 잠들어 있었다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영적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언제 절망하는지를 생각해 볼까요?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절망이란 것도 대부분 기회를 놓쳤을 때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기도할 기회를 놓쳤던 것처럼 말이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절망의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이유를 알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제자들은 왜 기도하는 기회를 놓쳤을까요? 왜 제자들은 잠이 들었을까요? 의외로 대답은 간단합니다. 졸려서 잠들지 않았을까요? 이 졸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찾아오는 자연적인 현상, 자연적인 욕망이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욕망을 따라 살면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 되지만 우리들이 졸림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순간에 우리들이 영적으로 육신의 욕망을 거스르고 이길 수 있다면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겠죠. 갈라디아서 5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혹시 우리들에게도 이런 절망의 이유가 있나요? 육적인 소욕을 따라가 성령을 거스르게 한 것으로 인해 심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나요? 1월 5일 묵상에서 육적 의지로 주님을 따랐던 베드로가 절망했던 순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성령께서 일하실 절호의 순간이었다는 것도 우리는 알았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이 <성도의 공동생활>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자신의 모든 불쾌하고 악한 모습에 환멸을 느낀 공동체야말로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을 믿음으로 붙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실망이 개인에게나 공동체에 빨리 찾아올수록, 양자에게 훨씬 유익합니다.
이 글을 오늘 묵상과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공동체에서 절망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본연의 모습, 우리들 스스로 절망하는 모습, 바로 이 순간이 될 때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환멸과 절망의 순간이 빨리 찾아올수록 그것이 유익이 됨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절망은 기회를 놓쳤다는 후회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어나라

절망 속에서 우리를 끌어내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들 스스로 절망의 잠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들어 있었고, 그로 인해 절망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오늘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챔버스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자느냐.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구나. 내가 다시 바꿀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일어나라. 함께 다음 단계로 가자.' 과거로 하여금 잠이 들게 하십시오. 그러나 과거가 예수님의 품 안에서 잠들게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다가오는 미래로 들어가십시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요? 하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보자는 의미요 다른 하나는 지금은 기도할 때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움직일 때라는 말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도 영적 시발점, 여기 시발점이라고 하는 말 지난번에도 언급했던 이니셔티브라고 하는 말인데 영적 동기, 이렇게 번역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절망이 무서운 것은 자꾸 과거를 바라보며 후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는 순간에 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기도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후회의 감정 말입니다. 이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영적 동기를 부여해 주십니다.
시카고 무디 기념교회를 담임했던 어윈 루처 목사님의 책 <회복의 하나님을 붙들라> 이 책에 제가 정말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는 귀한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상처받은 우리의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붙들 수는 있다.
그러니 회복의 하나님을 붙들라는 거죠.
우리 주님께서 "일어나 함께 가자"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절망하게 만들었던 제자들의 과거를 없애겠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더 이상 과거의 상처 속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이런 말씀이죠. 우리로 하여금 다음 단계로 가는 영적 동기를 주님께서 부여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제 이 말씀의 순종에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챔버스의 묵상글에 계속 나오는 동일한 맥이겠죠. 결국 우리들이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
그럼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챔버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일어나자. 다음 단계로 가자.'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힘을 얻었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주의 구속을 바탕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이 부분에 조금 전에 언급했던 '지금은 기도할 때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움직일 때'라는 말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실 때 제자들 중에는 주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더 깊은 영적 침체로 이끌어 갈지 모릅니다. 후회와 연민으로 하는 기도는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가자고 하시면 일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미래를 향한 소망의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셨으니 구속의 은혜를 힘입어 기도해야 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기도의 형식은 동일하지만 기도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실패의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일어나 주님과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기도가 모두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침체된 기도가 아닌,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기도가 절망을 이기는 첫걸음입니다.

오늘을 살아낼 묵상질문

혹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기억이 있나요? 그렇다면 회복의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짧은 기도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러일으키소서. 우리는 나사로와 같이 무덤 속에 있나이다. 생각도, 눈물도, 피도 없는 송장입니다. 수의를 입히고 줄로 꽁꽁 묶어 놓았으니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러일으켜 세워주소서. 그리고 걸어서 나오게 하여 주소서. 죄악이 우리의 심령을 덮어 싸고 있습니다. 마귀의 사슬에 우리는 얽매여 있습니다. 주여, 다 풀어주셔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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