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의 의미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일을 우리를 대신해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장 21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현대의 관점은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분이 동정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일치가 되시므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고 봅니다. 곧 주님은 죄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은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사라집니다. 주님의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주님의 순종의 결과이지 우리를 향한 동정심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순종이나 헌신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죽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 께서 하나님의 아버지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께서 세상의 죄를 지기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계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들에게만 해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해 절대로 아버지를 보여주는 분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걸림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형벌에서 자유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고후 5:15)는 것이고, 나는 주님의 죽으심과 일치가 됨으로써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주님 자신에 의를 부여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속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해 죄를 삼으신 것"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조성되도록 결단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역의 효력이 내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속의 의미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속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죠. 하지만 성경은 동정심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가 되시므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렇습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곧 주님은 죄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은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사라집니다. 주님의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주님의 순종의 결과이지 우리를 향한 동경심의 결과가 아닙니다.
지난 며칠 동안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들을 챔버스의 묵상을 통해 다루어 왔습니다.
오늘 구속에 대해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이고 신학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 번쯤은 우리들이 잘 정리하고 정립해야 될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시는 이유는 우리의 헌신이나 순종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헌신이나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이나 순종은 원인이 아니라 대속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번 강조해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지 않으신 하셨다면 우리의 헌신이나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이나 순종은 원인이 아니라 대속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대속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동정심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뿐 아니라 주님이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오셨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죄를 지기 위해 오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 역시 대속의 결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가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랑의 계시를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죠. 이것은 오로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장이 하나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 대해 절대로 아버지를 보여주는 분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걸림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챔버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가만히 이 부분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걸림돌이 되실까요?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이미 선포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사건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고. 나는 바로 이 주님의 죽으심과 일치됨으로 죄로부터 구원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일을 우리를 대신해 죄로 삼으신 것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십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소개합니다. 강중민 목사님이 쓴 복음 받은 사람의 행복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과 적용해서 한번 들어보세요.
1892년 미국의 조지 윌슨이라는 한 남자가 우체국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다. 강도와 살인죄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유죄가 입증되어 결국은 교수형을 언도받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친구들이 그를 위해 탄원에 나섰고 다행히 앤드류 잭슨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장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면됐다는 소식을 접한 윌스는 죽겠다고 고집하면서 사면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보안관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공식적으로 사면을 받았는데 자기가 원한다고 처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다시 잭슨 대통령에게 보고합니다. 당혹스럽게도 대통령도 마찬가지여서 이 사건을 다시 미 연방 대법원으로 넘겼습니다. 그러자 대법원장 존 마셜은 다음과 같은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면은 한 장의 종이일 뿐이며 종이의 가치는 전적으로 관계된 사람의 수락 여부에 달려 있다. 사형선교를 받은 자가 사면을 거절하는 것은 전례가 드물지만 거절했다면, 그것은 결코 사면이 아니다. 그래서 조지 윌스는 조수대에서 처형되었으며 그에게 주어진 사면장은 불과 30 여 미터 떨어진 보안관의 책상에서 무용기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앤드류 잭슨 대통령과 비교할 수도 없는 능력과 은총으로 우리에게 사면장을 보내셨습니다. 사면장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담아두신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해 죄를 삼으신 것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조성되도록 결단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역의 효력이 내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구속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 안에서 구속의 은혜가 넘쳐 흘러야 한다는 것이죠. 아니 주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이 우리 안에서 효력을 나타내므로 우리는 이제 순종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의지를 오로지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시는 유일한 이유는 순종과 헌신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대속의 사건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당신은 놀라운 대속의 은혜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입으로 말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놀라운 사건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들이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인하여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챔버스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우리의 죄를 사하신 놀라운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시고 받아들이게 하시고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고백 가운데서 비로소 순종의 삶을 거룩한 삶을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삶을 살게 하여 오늘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것임을 고백하며 기쁨과 감사의 고백이 있는 하루 우리의 인생이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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