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처럼 사랑합니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예레미야 2장 2절
예전처럼 여전히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친절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친절하시기만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불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을 망각한 영혼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필요로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귀한 마음입니다.
"물을 좀 달라(요 4:7)" 지난주에 주님께 얼마나 많은 친절과 사랑을 보였습니까? 우리 인생을 통해 주님의 이름을 얼마나 영광스럽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금 나와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구나. 그러나 내가 과거에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던 때를 기억한다."
처음에 가졌던 그 사랑처럼 지금도 주 예상 주님을 향해 차고 넘치도록 사랑합니까? 예전처럼 주님을 향한 나의 헌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까? 과거에 오직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던 시절을 기억합니까? 지금 그때와 같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간교해져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겼습니까?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당신이 어디로 가든 걱정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받아야 할 존경과 영광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얼마만큼 봉사해야 하는지 저울질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와의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기억하고 계십니다. 만일 지금 주님께서 과거와 다르게 나를 대하시는 것을 발견한다면, 창피와 모욕을 느낄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부끄러움은 회개로 인도하는 거룩한 슬픔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21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묵상의 제목은 처음 그 사랑처럼 사랑하십니까? 오늘 묵상 역시 두 개의 주제로 나누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얼마나 주님께 친절하셨습니까?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아주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데 우리들이 얼마나 주님께 친절했느냐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얼핏 엉뚱한 질문 같은데, 아주 본질적인 우리 신앙의 문제를 묻고 있습니다. 챔버스의 질문입니다.
예전처럼 여전히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친절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친절하시기만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불평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 챔버스의 질문 중에 저의 눈에 확 띄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리고 '적극적으로'라고 하는 단어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본문과 연관 지어 보면 여호와께서 네 청년의 때에 인애와 네 신혼의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다 바로 이 말씀 앞에서 우리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과연 신앙에 부합한 사람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가졌던 첫사랑의 진지함을 지금도 가지고 있느냐는 물음이죠.
또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주님이 우리의 사랑을 기억하신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도 주목해 보고 싶습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 해설에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즉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어떤 다른 칭찬이나 영광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의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한 때가 있었던 것을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받는 존경과 영광을 구하기 시작하였다면 순결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순결한 사랑에는 어떠한 계산도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관계 가운데 있을 때 무의식 중에서도 상대에게 친절합니다.
왜 챔버스가 친절이라고 하는 물음을 물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러니 우리가 주님께 친절한지 아닌지를 보면 우리의 사랑이 뜨거운지 식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를 보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필요한 존재로 느끼실까?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더 이상 친절하지 않다면 순결한 사랑을 잃었다는 증거입니다.
2. 첫사랑을 회복하십시오.
혹시 우리의 사랑이 과거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하라고 챔버스는 다시 한번 폭풍 같은 질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챔버스의 질문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사랑처럼 지금도 주 예수님을 향해 차고 넘치도록 사랑합니까? 예전처럼 주님을 향한 나의 헌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까? 과거에 오직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던 시절을 기억합니까? 지금 그때와 같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간교해져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겼습니까?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당신이 어디로 가든 걱정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받아야 할 존경과 영광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얼마만큼 봉사해야 하는지 저울질하고 있습니까?
챔버스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실 친절만을 기대하고 있다면 첫사랑을 잃었음이 분명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주님의 권면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죠.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오늘 말씀과 연결하여 첫사랑 그것의 중요함을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인도 어느 왕국에 아주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왕비는 왕과 결혼한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이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다가 왕비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먼저 정성스럽게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왕의 눈에 비친 무덤이 너무 쓸쓸해 보여 신하들을 지켜 자신을 상징하는 미남자 조각을 무덤 동편에 세워 놓았습니다. 1년 후에 이곳을 지나가던 왕은 다시 무덤을 앞에 재력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집을 짓도록 했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1년 후에는 무덤 북편에 권력을 상징하는 훌륭한 성곽을 세워놓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뒤에 왕은 흡족한 마음으로 멋진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가운데 처음에 만들어 놓았던 초라한 무덤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저 가운데 있는 무덤을 치워버려라"
우리도 이런 과오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처음엔 감격스럽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셨던 자신들이 점차 자기를 드러내고 전통이 드러내고 재물 명예 권력이 드러나며 그로 말미암아 결국엔 하나님이 점점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끝내 귀찮은 존재가 되어 집어치워 버리자 하는 마음을 갖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물었던 처음 질문에 대하여 정직하게 이런 답을 달아보았습니다.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 중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 중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받을 영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 중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의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 중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대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 중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공평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하나님의 사랑이 과거가 되어버린 사람에게 하나님은 단지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우리 영혼에 '거룩한 슬픔'이 있습니까?
짧은 기도로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오, 주님 저는 자주 주님을 버렸으나 주님은 한 번도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다른 곳에 마음이 팔려 있을 때에도 주님의 사랑의 손은 항상 저를 향해 뻗어옵니다.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은 제가 듣지 않으려고 고집부릴 때에도 항상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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