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만족시키는 삶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28)
"물을 좀 달라(요 4:7)" 우리는 주님을 만족시켜야 할 때 오히려 우리의 갈증을 해소시켜 달라고 주님께 조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죽게 쏟아붓고 마지막까지 다 드려야 합니다.
"너희는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이는 주님께 투정하거나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는 가운데 순수한 동기로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즉, 주님이 우리를 어디에 두시든 그곳에서 주님께 만족이 되는 삶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충성을 가로막는 것들을 주의하십시오. 주님을 향한 충성을 갉아먹는 가장 위험한 경쟁 상대는 주님을 위한다고 하는 '봉사'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희생하는 것보다 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봉사'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한 가지 목표는 하나님의 만족입니다. 주를 위해 무언가를 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라고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전쟁에서 도구가 되라고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했습니까? 아니면 주를 위한다는 어떤 '봉사'에 마음을 드렸습니까?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18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목상의 제목은 주님을 만족시키는 삶입니다. 오늘 역시 챔버스의 글을 통해 두 가지의 대지로 나누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 뒤바뀐 순서
챔버스의 전기 [오스왈드 챔버스의 순종]에 보면, 미술가가 되어 복음을 전하려 했던 챔버스의 꿈이 좌절됐을 때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때 그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위한 미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만이 그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다. 이러한 챔버스의 생각은 영적 암흑기를 지나는 동안 실제로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음성을 들었다고 하죠.
나는 네가 나를 섬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너 없이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을 만족시키려는 노력들이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습니다. 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노력보다도 순종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표가 되는 것이죠. 우리들 주변에 대부분 실족하여 넘어지는 사역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다가 실족하는, 탈진하는 그런 사람들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만 우리 자신이 아니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충성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충성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미술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귀한 일이었습니다. 챔버스에게, 하지만 일로 인해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 사역이 오히려 온전한 순종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런 심각한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우리의 재능으로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할 때 '우리 속에서 나를 만족시켜 주세요' 하는 바람으로 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님은 너희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내 증인이 되라(사도행전 1:8)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챔버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이는 주님께 투정하거나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는 가운데 순수한 동기로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즉 주님이 우리를 어디에 두시든 그곳에서 주님께 만족이 되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A.W. 토저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시대 현대 신앙인의 문제는 봉사에 집착하여 참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의 복음 그것이 교회 안으로 밀고 들어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밀어냈다라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주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 동기가 될 때 나의 만족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2. 주님을 향한 충성을 가로막는 것
오늘 본문은 의심 많은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고백하는 말입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진지한 고백입니다. 챔버스가 순종의 길을 가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었던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도리어 충성을 위협하게 만드는 자신의 봉사와 헷갈리는 것이었죠. 오래전에 제가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일찍 목회를 은퇴하시고 평소에 서원했던 선교사가 되어 선교지로 나간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정말 뜨거운 가슴으로 열심히 일을 했는데 아무리 사역을 해도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입니다. 몇 해를 고민하다가 고생하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 선교지에서 철수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때 주님이 이 선교사님의 마음 가운데 이런 음성을 주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거기에 있는 것은 네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열심히 끝나는 지점에서 사역이 끝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사역에 열매가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부르심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열매를 바라보고 있는가?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챔버스의 글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희생하는 것보다 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봉사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한 가지 목표는 하나님의 만족입니다. 주를 위해 뭔가를 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라고 보냄 받은 자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전쟁에서 도구가 되라고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진정한 충성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구별하게 됩니다. 주님을 위한다는 말이 우리들 속에서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도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헌신은 주님을 위해 우리가 하는 '무엇'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것에 대한 만족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단지 우리가 주님이 하시는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것에 대한 감사가 있다면 교만한 일도, 실족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리스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선교사 제임스 프레이저의 전기 [산비]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고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일이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맡기신 일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과 함께 눈앞에 작은 일도 하나님께서 맡겨두신 것이라면 기쁘게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다면 주님이 만족하시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주님을 만족시키는 일이란, 주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든지 도구로 쓰임 받을 때입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지금 당신에게 맡겨진 일에 만족과 감사가 있으신가요?
짧은 기도로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감을 믿는 것이 저의 생명이요, 하나님의 뜻대로만 순종케 됨이 저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뜻대로 부하고 귀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패망자가 되기를 저는 기뻐하나이다. 이렇게 저는 저의 생활관을 진리로 해결할 자가 되어 죽으나 사나 주의 것이 되어 자족한 생활자가 되었나이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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