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입니까?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요한복음 1장 38-39절


"그들이 가서•••그날 함께 거하니"(요 1:39). 기껏해야 그분과 '하루'를 함께하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현실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시작하다가 더 이상 주님과 함께 거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어떠한 삶의 조건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네가•••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 1:42).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교만과 자긍과 이기심을 지워 버린 곳에 친히 새로운 이름을 적어 주십니다. 우리 중에는 마치 영적 홍역처럼 몇 군데에만 새로운 이름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부분에서는 아주 잘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최상일 때는 매우 대단한 성도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침체일 때는 아무에게도 본이 되지 않는 형편없는 성도가 됩니다. 제자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이름을 가진 자입니다. 제자에게는 사욕과 교만과 자족이 완전히 지워져야 합니다.
교만은 자신을 신성화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에 있어서 교만은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아, 나는 도저히 성도라고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무의식적인 신성 모독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말은 "나는 너무나 약하고 가능성이 없기에 십자가의 속죄로도 나를 어쩔 수 없어"라는 의미로, 당신을 성도로 만드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왜 자신을 성도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는 당신이 성도가 되고 싶지 않거나 그러나 당신을 성도로 만드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시고 즉시 천국으로 데려가시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조건을 만들지 마십시오. 아무 조건 없이 예수님께서 모든 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당신을 단 하루가 아니라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6월 12일 성도입니까?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어제부터 조금 세팅이 바뀌었죠. 이렇게 새벽이 오는 느낌이 우리들에게 참 잘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침 묵상이 여러분들에게 빛처럼 스며드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성도가 되는 법

오늘 묵상은 어제와 동일한 원문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어제 언급하진 않았는데 영어로 Getting there 그런 말로 되어있습니다. 어제 묵상의 제목은 내게로 오라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 오늘 번역은 성도입니까?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원문은 Getting there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처음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던 그런 장면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주님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단지 하루를 예수님과 함께 지낸 제자들에게 주님은 "와서 보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단지 하루를 주님과 보내고서 다시 삶으로 돌아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자는 요청입니다.
우리를 주님과 함께 거할 수 없도록 하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지 않을 뿐이죠. 다시 한번 이 문장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를 주님과 함께 거할 수 없도록 하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지 않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게바라는 이름을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사건은 바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와서 보라'고 명령하신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교만과 이기심을 이긴 성도의 삶에 새로운 이름을 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문제는 새로운 이름이 삶의 전 영역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오늘 묵상글에서는 '영적 홍역'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홍역을 앓고 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성도의 삶을 사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죠. 챔버스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최상일 때는 매우 대단한 성도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침체일 때는 아무에게도 본이 되지 않는 형편없는 성도가 됩니다.
제자 혹은 성도의 삶은 영적 홍역에 걸린 것처럼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만은 자신을 신격화해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욕망입니다. 챔버스의 글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아, 나는 도저히 성도라고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무의식적인 신성모독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말은 '나는 너무나 약하고 가능성이 없기에 십자가의 속죄로도 나를 어쩔 수 없어'라는 의미로 당신을 성도로 만드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 챔버스의 글이 아주 흥미롭지 않습니까?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라니 말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에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말만 교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할 수 없다는 말도 교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독교 교양]이라는 책에서 데이빗 씨멘즈는 진정한 겸손과 자기 비하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이죠.
자기 비하는 겸손도 거룩도 성화도 아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갈 2:20)는 것은 자기 비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깎아내리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낮은 자긍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마음이 아니다. 우리의 과거로부터 오는 마음이다.
챔버스가 말하는 능력 없는 십자가는 여전히 자기 과거에 얽매여 있는 사람이 취하는 그런 태도입니다. 그들은 마치 영적 홍역처럼 몇 군데에만 새로운 이름을 가진 자들입니다.
챔버스가 오늘 우리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스스로 성도라고 말하지 않는가 챔버스의 글입니다.
이는 당신이 성도가 되고 싶지 않거나 당신을 성도로 만드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 말이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애써 피하고 싶은 사명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나약한 고백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저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 비하일 것이다. 자기 비하는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속에 선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일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닐까요? 그러니 진정한 성도가 되는 것은 삶의 온 영역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필요할 때만 부분적으로 묵상하면 그 외의 시간은 사탄이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종종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바로 천국에 들어가시면 좋겠다. 그런 꿈을 꾸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도가 되는 것은 주님께 나와와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성도로써 살면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나는 진정한 성도라고 할 수 없어!'라는 말이 겸손이 아닌 또 다른 교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당신은 부분적인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언제나 하나님을 묵상하고 바라는 온전한 성도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우리들에게 묻고 있는 거룩한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진짜 성도입니까? 우리가 부분적으로 성도로 살아가지만 온전한 성도로 살아가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오늘 하루 우리를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사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성도들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셔서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승리하는 부분적인 그리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는 하루가 되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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