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로마서 6장 16절


나를 지배하는 세력을 점검하려면 가장 먼저 그 세력에게 스스로 기꺼이 순복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종이라면 언젠가 나 자신에게 순복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책임은 오직 내게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이는 나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렸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이기심에 순복했다면, 이제는 그 이기심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굴레를 씌우는 폭군이 된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순복을 통해 형성된 기질은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어 영혼 속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제거될 수 없습니다. 다 한순간이라도, 한 번이라도 정욕의 마음을 주면(정욕이란 마음늬 정욕이든 육체의 정욕이든 "나는 지금 당장 이것을 가져애 해"라고 말합니다) 정욕에 항복한 자신을 아무리 미워한다고 할지라도 이미 당신은 그 정욕의 종이 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에게는 그 종의 상태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만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을 주관하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나오려면, 그  세력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분께 철저한 겸손의 자세로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그분은 바로 주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며"(눅 4:18)
우습게도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정욕의 종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아무 때나 버릇을 버릴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 정욕에 기꺼이 순복했기 때문에 버릇은 당신을 완벽하게 다스릴 것입니다.
"그분께서 모든 결박을 푸셨도다"라고 찬양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욕에 철저하게 종된 삶을 사는 것은 쉽습니다. 오직 주님께 순복할 때만이 인생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3월 14일 순종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에 나를 내어주는가

오늘 묵상이 흥미로운 것은 제목에 사용된 순종이라는 말입니다. 이 obedience라고 하는 영어 단어를 쓰고 있는데, 순종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사실은 오베이라고 하는 동사 한 번을 제외하고는 obedience라고 하는 말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오늘 본문에서는 원문의 양도(yield)라고 하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묵상글에 나오는 순종 혹은 복종이라는 말은 영어 단어의 yield를 번역한 말이기 때문에 오늘 묵상글 그중에서는 yield라고 하는 개념, 양도하라는 말을 좀 구별해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뜻이죠. 미국에 가면 교통 표지판들이 있는데, 길이 갈라지는 곳에 노란 걸로 yield라고 쓰여져 있는 낱말들이 있습니다. 낱말을 보는 그 차들은 무조건 양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양도하다라는 말이죠. 우리가 순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배하는 세력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즉, 내가 어떤 것에 지배를 당하고 있다면 세력에 나를 양도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서 내가 나의 종이다라고 말할 때 나는 나에게 내 자신을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챔버스의 글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이는 나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명확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의 나를 양도했느냐에 따라 그 대상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기심에 나를 내어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정욕에 나를 내어주면 나는 정욕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한번 내어준 것에 대하여 종이 되는 순간 그것에서 헤어나올 능력이 우리들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챔버스는 본문 로마서 6장 16절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죠.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나 자신을 성령님께 양도한다면,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준비하다 온라인에서 아주 흥미로운 예화를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호수 근처에 살고 있는 어떤 소년에게 아버지는 혼자서 결코 수영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느 날 그 아버지가 수영을 하고 있는 아들을 붙잡았습니다. 어린 소년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하지만 내가 수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아버지가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호수 근처에 놀러 가면서 왜 수영복을 가지고 갔지? 수영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서 가지고 갔어요라고 소년이 대답합니다. 이 소년의 변명을 보며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미 유혹에 자신을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으니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닐까요? 즉 유혹의 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순종의 문제는 어디에 우리 자신을 양도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따라 대상만 바뀔 뿐 입니다. 찰스 쉘던이 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아실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많이 읽혀졌고 저도 이 책을 읽고 교인들과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감동과 변화를 주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 맞닥뜨리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의 삶을 주님께 양도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우리가 육신의 정욕과 이기심에 자신을 내어줬다면 이 모든 세력을 깰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께 우리를 양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이유를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자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무엇에 자신을 내어주느냐가, 당신이 누구의 종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무엇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가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스스로 속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참 무서운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들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죠. 챔버스의 말입니다.
우습게도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정욕의 종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아무 때나 버릇을 버릴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정욕에 기꺼이 순복했기 때문에 버릇은 당신을 완벽하게 다스릴 것입니다.
누군가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주도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철학 교수님이 하시던 말이 제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피우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자유로운 사람일까요?' 흔히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순간 반쪽의 자유밖에는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담배를 피우지 않을 자유는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우리 인생에 뭐 그렇게 큰 문제겠습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에 내 자유를 내어주는 순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 정욕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은 정욕의 습관이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그것을 깰 능력이 우리들에게는 없다는 것이죠. 아주 사소한 일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소한 일로 인해 우리의 자유가 잠식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의 선택권을 주님께 양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를 모든 정욕과 욕심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가능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나쁜 습관들에 대하여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마음과 능력이 있다면 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양도하지 못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의지를 정욕에 양도하므로 이미 정욕의 종된 상태에서 자유할 능력을 잃어버렸지만 우리를 자유케 하실 능력 있는 주님 앞에 순종할 능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옛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우리의 소원이 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의 소원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과 그것을 행하는 일을 우리의 유일한 소원이자 기쁨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아직 우리에게는 우리를 자유케하실 주님께 순종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살아낼 묵상질문

정욕에 자신을 양도하므로 잃어버린 자유가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말로는 순종한다는 말을 참 쉽게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 나를 양도하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들이 깨닫습니다. 혹시 우리가 순종한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정욕에 나를 양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닌지 혹시 우리의 정욕을 제어할 수 없는 불가능 가운데 우리들이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너를 주님께 내어드려라 너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라' 오늘도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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