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나 판단에 따른 사역

이로써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한복음 16장 30절~31절


이제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느냐? 너희가 나를 홀로 두고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홀로 내버려 두고 의무감이나 자신의 특별한 판단에 따라 일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적 이해를 의지하면서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잃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죄악이나 이에 딸린 형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깨닫지 못함으로써 혼돈과 슬픔과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나중에 그는 이를 깨닫고 부끄러움과 후회에 빠집니다. 우리는 훨씬 더 깊게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만사를 주님과 연결 짓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상식적인 결정을 내리고 하나님께서 그 결정들을 축복하실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상식적인 결정은 주님의 영역에 속하지 않으며 영적 실체와 차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무감으로 사역을 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경쟁이 되는 또 다른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쭐한 사람'이 되어 말합니다. "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 봐야지."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 대신에 우리의 의무감을 보좌에 앉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심의 빛이나 의무감으로 살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빛 가운데 계신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서 걸으라고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의무감으로 무언가를 할 때는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할 때는 논쟁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도들은 쉽게 조롱을 받습니다.


매일 만나 365, 오늘은 2월 28일 의무나 판단에 따른 사역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오늘 한 가지 주제로 주님을 홀로 두기와 주님과 동행하기의 차이에 대하여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주님을 홀로 두기 vs 주님과 동행하기

챔퍼스는 묵상을 통해 우리의 거짓된 믿음을 드러내고 참다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묻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역자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말씀이 될 듯합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홀로 내버려 두고 의무감이나 자신의 특별한 판단에 따라 일합니다.
예수님을 홀로 내버려 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예수님을 홀로 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 오늘 특별히 사역자들에게 초점을 준다고 했습니다. 이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종교적인 이해를 의지합니다. 이런 차이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과 신앙적인 일을 하는 것의 차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끊임없이 지적하셨던 무리들이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종교적 이해를 가지고 충실히 의무를 이행했던 사람들, 사두개인, 바리새인, 제사장들과 같은 그룹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서 열심히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겁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을 하니, 하나님을 홀로 두는 행위가 아니었을까요? 종교적 열심에 참다운 신앙이 없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홀로 둘 때 주님이 없는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기 전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설교하신 내용에 대한 물음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이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믿사옵나이다"라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 반문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다음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면 주님과 연결된다는 것 부활하신 주님과 깊이 연결되어 의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챔버스는 의무나 판단에 따른 사역은 우리의 상식적인 결정에 속한 것이기에 영적 실체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의 상식에 기초한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간구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는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죠.
우리가 의무감으로 뭔가를 할 때는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할 때는 논쟁이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도들에게 쉽게 조롱을 받습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참 오랜 시간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했던 것 같아요. 주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쉽게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의무감은 충분한 이유와 설명이 가능하다 영어 원문에 보면 duty라고 하는 말을 쓰고 있는데, 우리들에게 일반적인 의문은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설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은 설명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세상적 상식과 기준에서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조롱거리가 된다. 이게 이런 말이구나. 주님께 순종하면 세상이 우리를 조롱할 수도 있겠구나. 순종은 사람들과 합리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그저 순종일 뿐입니다. 순종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조롱당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순종이 주님을 쫓아 빚 가운데 행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그 주님을 따라갑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우리보다 앞서서 일하신 주님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쫓아가는 사역을 하는 우리가 우쭐댈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의무를 내세우니 우쭐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렌스 형제의 이야기는 의무나 우리의 판단이 아닌 순종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렌스 형제의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로렌스 형제가 싸움이 많기로 소문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문제 많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수도사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 부임한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수도원의 전통이었던 모양입니다. 로렌스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하고는 곧장 식당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갑니다. 그는 한 달, 두 달, 세 달 계속해서 접시를 닦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멸치와 천대와 구박이 쏟아졌습니다. 석 달이 지나서 감독이 순시차 수도원을 들렀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은 감독 앞에서 쩔쩔맸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로렌스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들은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겸손으로 그 후부터 그곳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습니다.
로렌스 형제의 이야기는 순종하는 삶이 때로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핍박을 받고 멸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의무나 판단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그 순종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자는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우리의 부르심은 이해할 수 있는 '의무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빛 가운데 순종하라는 데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낼 묵상질문

로렌스 형제의 삶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챔버스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순종은 순종이다. 순종은 때로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주님을 따라가는 순종이다. 그 순종이 주님과 우리로 하여금 동행하게 만들며 그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드니 오늘 우리도 순종하며 주와 함께 동행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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