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체험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


기분과 싸워 이겨서 자신을 주 예수님께 완전히 드려야 합니다.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체험에서 나와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십시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말하는지 생각해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비참하고 형편없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이러저러한 체험을 해보지 못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이 무엇을 요청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바치십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이 순결하고 완벽하게 고침받은 존재로 철저하게 의롭고 조금도 흠없는 존재로 우리를 하나님께 바치십니다. 주 예수님에 대해 분명하고 사모하는 믿음을 가지고 든든히 서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내 희생이 어떠하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분은 나를 지옥과 파멸로부터 구원해 주셨는데 어떻게 내 희생에 대해 따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회나 책 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분이요,  우리를 그분의 발 앞에 죽은 자같이 만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체험이 아니라 체험을 주신 분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만을 향한 우리의 완전한 헌신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믿음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없으며 주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실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만을 향한 절대적인 강한 확신 가운데 세워져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불신앙을 향한 성령의 엄격한 독촉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두려움은 악한 것이며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이 의심과 두려움으로 고통을 받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무엇도 억제할 수 없는 승리의 믿음을 온전한 찬양 가운데 드러냅니다.


기분에 휘둘리지 않기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기분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관념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면 진정한 믿음이 아니죠.
5월 20일 묵상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기분이란 기도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발로 차버려야 떠납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다가옵니까? 오늘 묵상 첫 문장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기분과 싸워 이겨서 자신을 주 예수님께 완전히 드려야 합니다.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체험에서 나와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십시오.
진정한 믿음은 싸우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기분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레몬심리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차이만 있을 뿐이지 누구나 기분을 드러낸다 내 기분은 내 선에서 끝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겉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기분과 태도는 별개다 내 안에서 저절로 생기는 기분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태도는 다르다 좋은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기분이라는 말 영어로 무드라고 하는 거죠. 이 기분은 때때로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마음을 깊은 스올로 끌어내리기도 하고, 의심과 두려움으로 고통받게 만들기도 합니다. 기분이 우리 신앙의 태도가 되지 않게 주 예수님께 모두 맡기는 것이 기분과 싸워 이기는 방법입니다.
기분에 휘두르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어떤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며 자신의 희생을 자랑하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기분에 휘둘리지 않고 산다는 것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분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믿음은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 담대의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기

이러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일회적인 체험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번 강조한 말이죠. 구원의 은혜는 한 번이면 족하지만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훈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회나 책 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체험이 아니라 체험을 주신 분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체험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때는 체험을 주신 주님을 향한 믿음이 온전할 때입니다. 체험에 만족하면 그 체험을 붙잡고 안주하지만 체험을 주신 분께 집중하면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세상과 싸우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A. W.토저의 [하나님을 체험함]이란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믿음 자체가 공론은 아니다. 모든 공론은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께이다. 믿음은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죄로 인해 영원의 눈이 왜곡되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불신앙이란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에 자기 자신을 올려놓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보자 위에 내 보좌를 두리라고 말했던 루시퍼의 죄에 버금가는 악한 죄다 믿음은 안이 아니라 밖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 때 삶 전체가 질서를 그렇다고 체험을 하찮게 여기라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 주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실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스왈드 챔버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나오는 글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끊임없이 '내게 믿음이 있다면 삶으로 증거하라고 주장한다. 체험은 절대로 내 믿음의 바탕이 될 수 없다. 체험은 단지 내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죄로부터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했고 성령 세례를 받았다. 이 체험들은 단지 공상이 아니라 실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체험을 한 이후 날마다 놀랄 정도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새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는 대신 체험에 두게 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위험에 빠지면 우리의 믿음은 삐뚤어지면서 그릇된 믿음으로 전락하게 되는 성령 세례를 받은 초대 교회의 제자들은 그들이 가르친 교훈과 일치된 삶을 살았다. 즉 성령님을 받은 그들이 살아있는 서신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내가 믿은 바를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참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즉 체험은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의 믿음보다 우리의 체험보다 무한하게 크시다.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향해 가진 믿음의 선상에서 발생한다. 당신은 당신을 아는 자들에게 당신의 체험을 간증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즉 예수님을 향한 당신의 믿음으로 인해 '지금의 당신'이 되었음을 증거할 수 있는가 당신은 예수께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실 수 있다고 믿는 말한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당신을 통해 일들을 다 이루셨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체험이 믿음의 바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체험은 단지 믿음이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체험에 만족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삶은 등한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시는 큰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믿음으로 우리들의 삶에 체험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체험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면서 체험만을 이야기하며 그 체험을 가능케 하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과거의 체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오늘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나의 삶을 통해서 증명되는 사람 그것이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현재의 사건으로 체험되는 그 믿음이 계속되는 삶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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