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계획과 개인적 적용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해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장 21절
죄는 근본적으로 관계입니다. 그릇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강력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그릇된 '존재 상태'가 죄인이다. 기독교 신앙은 모든 영역에서 적극적이고 뿌리 깊은 죄성을 해결하려는 데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죄악들'을 다룹니다. 성경만이 죄를 다룹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제일 먼저 직시하는 것은 죄의 유전이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가 사람의 마음을 찔러 쪼개는 능력을 잃은 이유는 바로 복음을 제시할 때 이 점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으로 짓는 죄악을 담당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죄의 유전을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친아들'이 죄인 되게 하심으로 죄인을 성도 되게 하심 성경 전반에 걸쳐 게시되는 내용은 주님께서 우리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일체가 되심으로 세상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마음을 다해 인류가 지은 모든 죄를 어깨에 지시고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죄인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바탕 위에 전 인류를 두셨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대로 인류를 회복시키셨으며 누구든지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것을 기반으로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구속할 수 없습니다. 구속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며 완벽하게 끝났고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각 개인의 문제입니다. 구속의 계시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고 의식하는 문제는 언제나 구별되어야 합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10월 7일 구원 계획과 개인적 적용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오늘 묵상의 원 제목은 한 단어, reconciliatio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화해라는 말입니다. 즉 죄를 관계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죄를 이해하는 일관된 관점은 그릇된 일이 아니라 그릇된 존재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구속을 단순히 죄를 해결하는 것으로 본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유전 형질을 바꾸는 것으로 보았던 것처럼 말이죠.
챔버스가 보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도 여기에 존재하는데, 종교들이 죄악들 이런 부분들을 다룬다면 기독교는 죄, 죄의 본성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죄악들이란 존재론적으로 죄의 유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챔버스의 말에 의하면 성경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으로 짓는 죄악을 담당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죄의 유전을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챔버스의 [주의 형상을 본받아]라는 책에서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죠.
죄(sin)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다. 이는 모든 범죄행위에 가장 깊이 뿌리내려 있다. 죄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 당신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지은 죄악(sins)이지 '죄의 유전'이 아니다.
죄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씻겨져야 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시는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죄악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아무런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에게 죄란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 주장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는 당장 반감을 느낄 것이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려줄 때 사람들은 크게 분개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어떻게 인류가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친아들을 죄인 되게 하심으로 이 땅에 죄인들을 성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 후서 5장 21절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일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동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와 같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일체이신 그분이 우리와 일체가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존재를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우리의 존재를 바꾸어 회복시키시는 것이었고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죄악들을 다루지 않고, 존재를 다룬다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구속의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완벽하게 그 일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일까요?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각 개인의 문제입니다. 구속의 계시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구원을 실제로 경험하고 의식하는 문제는 언제나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웨슬리의 구원과 은혜를 보면 이해하는데 좀 더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웨슬리는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이라는 말로 이 부분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사건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반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어요. 즉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모든 인류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죠. 하지만 이 구원을 일반론에서 특별한 나에게로 향하게 만들 때 그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내가 경험하고 살아내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글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우리들 개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묵상글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종, 항복, 양도 그리고 영적 가난함 같은 그런 말들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개인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책 [구원의 은혜]에 보면 놀라운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인용했던 글을 다시 한번 오늘 묵상해서 인용하려고 합니다. 바로 기억이 나실지 몰라요.
누군가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서, 말 한마디로 물이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면,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이적일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이 일을 성취할 자가 없다. 당신의 본성이 바뀐다면 나이아가라를 거꾸로 흐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이적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욕망의 방향과 생애 흐름을 바꾸어, 당신의 전 존재가 그분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그분께 가까이 나가도록 바꾸어 주실 수 있다. 사실 주님은 언약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을 약속해 주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이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아멘"이 된다. 이 언약을 굳게 잡자. 이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우리에게도 적용시키자. 그리하면 이 언약이 분명 우리 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가지고 있는 핵심은 일반적으로 계시된 구속을 개인적인 삶에서 적용하고 체험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당신의 삶에 구원의 은혜가 임했음을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구원의 역사가 당신의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계획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누군가를 위한 은혜로 그치지 않도록, 그 역사가 나에게 적용되고 내 믿음에 적용되고 내 믿음으로 살아가야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백했던 그 구원의 은혜가 오늘 나에게도 임했습니다'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 나를 여기에 이르게 하시고 주님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사오니 내가 구원받은 자로 이렇게 살아가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구원받은 자로서의 구체적인 삶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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