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포기할 때 성령을 받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한복음 13장 36절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 21:19) 3년 전에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마 4:19)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매력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를 따르는데 성령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었고 그의 마음은 찢겨졌습니다. 그가 성령을 받은 후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이제 베드로 앞에는 주예수 그리스도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따라오라"는 말씀은 신비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단순한 외적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따라오라는 말씀에는 자신의 자아를 죽여야 하는 내적 순교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두 부르심의 사이에는 베드로가 저주 및 맹세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베드로는 결국 자신에 대해 포기하게 되었고 자신 안에는 의지할 것이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로부터 능력을 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어떤 변화를 만드시든 결코 변화 자체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한 분 주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이 보내신 성령님만 의지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맹세와 결심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자신을 포기할 때 우리는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을 받으라" 이는 성령께서 외부에서 들어오신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 이후로 우리 인생에는 오직 한 가지 지표가 생깁니다. 바로 주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김병삼 목사와 함께하는 365일 매일 묵상 5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묵상의 제목은 '자신을 포기할 때 성령을 받습니다.'

외적인 따름의 허상

오늘 말씀 역시 어제 묵상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성이 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이미 베드로의 성급한 헌신이 얼마나 쉽게 깨어질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혹시 잊어버리신 분이 있다면 어제의 말씀을 듣고 이어서 들어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에게는 두 번의 부르심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르심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마 4:19)고 말씀하셨던 사건입니다. 이때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무척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고 난 후였으니 말입니다. 챔버스는 이 순간을 인간적 헌신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어도 매력적인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순종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아주 가슴 아픈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6절
내가 가는 곳에 내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잘 아는 일이 벌어지죠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제사장 앞으로 끌려가 신문을 받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난 후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베드로는 마음이 찢어듯이 아팠고 밖으로 뛰쳐나가 통곡하며 웁니다.
챔버스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대 시절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미술적 재능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을 받은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얘기를 계속해서 막으셨고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미술적 재능을 하나님께서 거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목회자로 부르시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결정을 한다면,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었으니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뇌하던 중에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그의 일기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런 부분입니다.
나는 네가 나를 섬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너 없이도 할 수 있다.
그가 들었던 음성은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챔버스의 매력적인 재능이 아니라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 챔버스는 아주 강하게 하나님과 친밀함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두 번째 부르심이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건이죠. 부활하신 예수님이 옛 생활로 돌아가 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셨고 그리고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이 이 두 번째 부르심 바로 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 상황을 챔버스는 이렇게 그의 묵상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두 부르심의 사이에는 베드로가 저주 및 맹세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베드로는 결국 자신에 대해 포기하게 되었고 자신 아내는 의지할 것이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로부터 능력 능력을 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 있게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던 고백과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후에 일어난 부르심의 사건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르심에서 그렇게 자신 있게 고백했던 베드로의 자아가 깨어진 곳에서 또 한 번의 진정한 부르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깨어짐의 순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에 합당한 때입니다.

능력은 성령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 베드로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지표가 생겼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한 삶의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었던 두 번의 부르심을 통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자의적 헌신은 처참하게 깨어지지만 성령의 인도와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맹세와 결심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자신을 포기할 때 우리는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을 받으라 이는 성령께서 외부에서 들어오신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 이후로 우리 인생에는 오직 한 가지 지표가 생깁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하면 외부에 계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실 수 있을까요? 좋은 예화가 있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낚시꾼을 가득 실은 배 한 대가 엔진 고장이 나서 바다 한가운데 멈추어 서게 되었답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칠흑 같은 밤이 다가오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그때 누군가 비상 등불을 찾아 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노를 찾아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고 희망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망망한 바다 가운데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육지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다시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서서 등불을 끄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운데 불이 꺼지면 어떡하냐고 말이죠. 등불을 끄자고 주장했던 사람이 나서서 불을 꺼버렸습니다. 배 안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 한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빛이 보인다. 육지의 불빛이 보인다' 반딧불같이 작고 희미했지만, 분명히 육지에서 비치는 불빛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있었던 비상 등불 때문에 가려져 있던 육지의 불빛이 주위가 어두워지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 맹세, 결심 우리의 불빛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불빛을 껐을 때 외부에서 성령의 불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연결해 보면 내 속에 있는 불을 끄고 나의 열심을 내려놓아야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비로소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지금 우리의 부르심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짧은 기도로 묵상을 마감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그로 인해 절망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함을 더 알기 위함입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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