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깨어있으십시오|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깨어 있으십시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있을 수 없더냐
마태복음 26장 40절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은 다 내려놓고 오직 주와 함께 온전히 깨어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후 처음 단계에서는 주님과 '함께' 깨어있지 않고 주를 '위해' 깨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삶의 상황들 가운데서 성경의 계시를 통해 주님과 함께 깨어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겟세마네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자신과 함께 하나가 되자고 제안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싫어요, 주님. 저는 그렇게 하시는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게다가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는 분과 함께 깨어있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왜 고통을 당하셨는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과 함께 깨어있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는 그분과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단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깨어 계신다는 생각에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으로 주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께서 무엇을 추구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슬픔 가운데 잠이 들었고, 그렇게 친밀했던 3년 동안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2:4) 여기서 "저희"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일들이 그 사이에 발생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지난 후에,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 1:8) 이후 그들은 그들의 남은 생애 가운데 주님과 함께 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던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9월 5일 깨어 있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함께'가 어려운 이유
[주님은 나의 최고봉] 이 책의 편집자인 비디의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9월 3,4,5일 묵상은 한 세트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3일 묵상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희생, 4일 묵상은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는 진정한 사역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묵상에서는 그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해 깨어 있으라는 권면입니다.
오늘 본문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서 기도하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십자가를 앞에 둔 상황에서 제자들을 향해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왜 주님과 함께 깨어있지 못했을까요? 챔버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후 처음 단계에서는 주님과 함께 깨어있지 않고 줄을 위해 깨어 있을 뿐입니다.
원문을 보면 watch with 그리고 watch for라고 하는 2가지 표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요? 처음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을 때는 주님을 기대하며 우리가 주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주님께 무엇을 바라는 마음으로 watch for him 이렇게 표현하는 것 같구요. 이 단계에는 아직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리스도인, 단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깨어서 기도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순간과 상황들 가운데 주님과 함께 깨어 있지는 않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깨어있지 못했던 이유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주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깨어 계신 것에는 익숙하지만 우리가 주님과 함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도무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쓴 [더 내려놓음]에 나오는 글이 오늘 묵상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읽어 드립니다.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힘들어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 가운데 이것만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막는 영역들이 무엇인지 헤아려보자. 예수님의 발치에까지 가지고 나갔지만 더는 깨뜨리지 못한 채 여전히 두 손에 꽉 틀어쥐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저는 깨어지기 싫습니다. 상처받기 싫습니다. 내 체면도 좀 생각해 주세요. 나도 영광을 같이 받고 싶습니다. 나도 적당히 같이 누리면 안 될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히 말씀하신다.
"네 안에 네가 너무 크면 내가 들어갈 수 없단다. 나는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구나.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나 네 안에 네가 너무 커서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네 것을 달라는 이유는 네 것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란다. 너를 온전케 하려면 네가 잡고 있는 그것을 깨뜨려야 한단다. 네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네가 그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니 줄 수 없는 거란다."
우리 안에 혹시 하나님조차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 있는가? 이 영역 안으로 주님을 초청하라. 주님이 내 의식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셔서 나의 주관자가 되어주셔야 한다.
이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깨어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나를 위해 깨어 계신 주님만 바라지 말고, 주님과 함께 깨어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셔야
제자들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해하지는 못 했습니다. 우리 자연적 인간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은 동산에서 잠들어 있었고,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의지나 본성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제자들은 오순절 강림 사건 이후에 깨어서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여기에서 그들은 누구일까요? 주님을 버리고 떠났던 그들과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이 남은 생에 주님과 함께 깨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오늘 묵상의 원문 제목은 The missionary watching입니다. 선교사로 부름 받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 깨어 있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 주님과 함께 깨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을 때 우리는 자의적으로 생각합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의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찰스 스탠리가 쓴 [변화를 이끄는 성령 충만의 법칙]에서 성령 충만이 빚어낼 변화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면 경제적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분명히 인간의 생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결과가 나타나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미국의 모든 신자가 매일 아침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일터에 나가 최선을 다해 일한다면, 일의 질이나 생산력이 크게 증대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신자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올바른 동기로 행한다면, 사람들의 태도가 개선되고 사기가 크게 진작될 것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아이디어들이 저절로 생각나게 되고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모든 신자가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일상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증오와 분노와 불신이 사라져 노상폭동, 폭력, 범죄, 온갖 형태의 학대가 종적을 감추게 될 것이다.
이렇듯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몸에 활력을 주시고 정신을 깨우치시며 열정을 자극하신다 성령 충만을 통해 우리 속의 잠재력이 발휘될 것이다. 성령은 우리의 잠재력을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하는 이유는 그분의 인도하심이 없을 때 우리가 자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당신의 삶에 성령님이 함께하시며 가르치신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아니 십자가를 치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깨어 있어 기도하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주님이 행하시는 구원사역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한다고 하고 주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주님과 함께 걷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성령의 도심을 요청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 안에 찾아오실 때, 주님을 이해하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될 때,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함께하는 그 일이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놀랍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백하고 간증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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