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8월 10일| 하나님에 어디에 두시든|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morning star1 2024. 8. 11. 18:07

하나님이 어디에 두시든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의탁할지어다
베드로전서 4장 19절


고난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난을 의미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선택한다면 이때는 매우 다른 의미입니다. 건강한 성도라도 고난을 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어떤 선택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고난이든 아니든 그 길을 선택합니다. 다른 성도가 고난의 훈련을 받을 때 참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성도는 다른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힘 있게 자라나게 하고 성숙하도록 돕는 자입니다.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자들은 우리를 동정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동정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오직 주님께 가장 가까운 성도들 외에는 다른 성도들을 연단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성도들의 동정을 받아들인다면 그로 인해 드는 생각은 '이런, 하나님께서 나를 거칠게 다루시는구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연민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 16:23).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언제나 마음을 넓히십시오. 우리는 주님이 자신을 신원하지 않으실뿐더러 답변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공생애 중 사람들의 동정을 필요로 하신 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사람으로부터의 동정을 거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주님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긍휼과 자비를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로부터 도움을 얻을 뿐이었습니다(눅 15:10).
세상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도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낭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주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가장 쓸모없는 곳에 성도들을 두십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이곳에서 내가 너무나 필요하기에 주께서 나를 여기에 두셨구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삶을 얼마나 쓸모 있었는가로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곳에 성도들을 두실뿐입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든지 맞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8월 10일 하나님이 어디에 두시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2개의 대지로 나눠봅니다.

고난을 대하는 태도

고난은 성도들에게 늘 시험입니다. 고난을 피하면 왠지 신앙적이지 않은 것 같고, 고난을 선택하면 감당해야 될 짐이 너무 무거우니까 말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 첫 문장에서 아주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선택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고난을 의미하더라도(고난임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선택한다면 이때는 매우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고난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신앙의 기준은 고난의 유무가 아니라 언제나 아버지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말씀하시고 보여주셨던 일관된 태도는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늘 기도하셨습니다. 문제는 내가 당하는 고난도 쉽지 않지만 다른 성도들의 고난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또한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챔버스의 글이 참 인상적으로 와닿습니다.
다른 성도가 고난의 훈련을 받을 때 참견해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이 많이 와닿는 부분인데 다른 성도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요? 저는 목회를 하는 동안 주님의 길을 가겠다고 결단한 자녀를 막아서는 부모와 형제들을 종종 만나곤 합니다.
내가 가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 더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길을 가로막거나 고난의 훈련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고난에 대하여 우리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고난 앞에서 취하는 태도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을 행한다라고 말할 때 이것이 단순히 동정심으로 하는 행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동정심이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훈련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 내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훈련의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입니다.
이전 묵상글에서도 챔버스는 자기 연민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가운데 다루실 때 자기 연민에 빠지면 자신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우리를 어디에 두시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고통'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의 가치

베드로전서는 특별히 믿음으로 인해 고난 받는 성도들을 위한 권면의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4장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의탁할 지어다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동정을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사람들의 동정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당하시는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주님께서는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긍휼과 자비를 구하셨을 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흔히 이곳에 내가 너무 필요해서 주님께서 나를 여기에 두셨구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가치로 평가한다면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이 낭비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준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곳에 성도들을 두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짐 엘리엇이라는 선교사가 있죠. 동료들과 함께 아오카족에게 무참히 살해당했을 때, 미국 잡지 타임에서는 이런 제목으로 기사를 뽑았어요. what a waste(웬 낭비인가). 그런데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남편의 죽음을 두고 '영광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게 됩니다. 성도의 가치는 유용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삶을 얼마나 쓸모 있었는가로 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곳에 성도들을 두실뿐입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든지 맞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챔버스는 성도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향해 힘 있게 자라나며 성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 회퍼 목사님이 프린스 알브레히트 슈트라스의 지하 감옥에서 보낸 적이 있죠. 아니 그곳에서 사형을 당했어요. 근데 그곳에서 [옥중 서신 -저항과 복종]이라고 하는 책을 썼고, 그리고 그 책에 실려있던 시 중의 하나인데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힘들 때 많은 교회에서 불리웠던 그런 찬양이 있는데 바로 이 시죠. 선한 권능에 싸여. 제가 노래가 아닌 시로 읽어드릴 텐데 여러분들의 머릿속에는 아마 이런 찬양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1절 선한 권능에 어린애같이 고요히 감싸여 보호와 위로를 받으니 놀라워라. 나 이 날들을 그대들과 함께 살려네. 새해를 그대들과 함께 맞이하려네.
2절 묵은 해가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괴로운 날들에 무거운 짐이 우리를 누리려 하니, 오, 주님, 우리의 놀란 영혼에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원을 베푸소서.
3절 당신께서 괴로운 잔, 쓴 잔 철철 넘치는 고난의 잔을 건네시니, 당신에 설하시고 사랑스러운 손에서 떨지 않고 감사히 받아 마십니다.
4절 그러나 당신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쁨을 베푸시어 이 세상과 그 햇살을 보게 하신다면, 과거를 잊지 않고 우리의 일생을 온전히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5절 당신께서 우리의 어둠 속에 들여보내신 양초가 오늘 따스하게 훤히 타오르게 하시고 되도록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 주소서! 우리는 아오니, 당신의 빛은 밤에 반짝입니다.
6절 고요가 우리 주위에 짙게 퍼지고 있으니, 우리에게 들려주소서. 보이지 않게 주위에 퍼지는 세상의 저 충만한 소리를, 당신의 모든 자녀가 부르는 힘찬 찬성소리를.
7절 놀랍게도 선한 권능에 감싸여 보호를 받으니 우리는 다가올 일을 자신 있게 기다리노라. 하나님은 저녁에도 아침에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새날에도 확실히 함께 하신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성도의 가치는 '유용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고통 중에도 선한 힘이 떠나지 않음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쓰신다면 무엇도 방해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을 대하는 성도들의 태도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는 것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것이지만 그 고난을 당하는 태도는 누구나 동일한 것은 아닌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때 우리를 단순히 얼마나 유용한가라고 쓰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리에 있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가 그런 모습으로 우리를 보심을 깨닫게 하여 주셔서 우리 성도들 오늘 하루 어느 자리에 있든지 어떤 고난의 자리에 있든지 이 모든 것이 유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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