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자발적 순종|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자발적 순종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한복음 13장 13절
주님은 절대로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결코 너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완벽하게 자유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 같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을 만큼 자유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그분을 죽였던 것 같이 우리도 그분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자유합니다. 그래도 주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생명이 주님의 구속에 의해 내 안에 창조되는 즉시 나는 주님의 완전한 권위 아래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도덕적 통치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합당하오니"(계 4:1) 내 안에 있는 가치 없는 것들만이 가치 있는 분께 순복 하기를 거부합니다. 만일 내가 자신보다 거룩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통해 오는 것들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는 내 안에 가치가 없는 것들이 드러나는 순간들입니다. 하나님은 지적인 면이 아니라 거룩한 면에서 우리보다 조금 나은 자들을 사용해 우리가 주님의 통치하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교육하십니다. 그 후 우리의 전반적인 삶의 자세는 주님을 향한 순종으로 일관됩니다.
주님께서 순종을 강요하신다면 그분은 노예 감독자와 같을 것이오 참된 권위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만나 뵙게 되면 당장 죽게 순종합니다. 우리는 쉽게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실 것이며 아침부터 밤까지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은혜 가운데 자라나고 있다는 증거는 나의 순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흙탕에 빠져있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살려내야 합니다. 순종은 동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참된 순종이 가능한 것이지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되면 참된 순종이란 그 의미가 사라지게 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그분은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아들의 순종은 구속주로서의 순종이었습니다." 아들이 되기 위해 순종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에' 순종하셨습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7월 19일 자발적 순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자유로움 가운데서
오늘 묵상에서는 챔버스가 계속 강조하는 순종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하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글을 시작하는 첫 문장에 주의해 보십시오. 진정한 순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주님은 절대로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에서 권위라는 말은 자유를 침해한다는 말입니다. 권위적이라는 말도 오히려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주님은 권위적인 명령으로 순종을 강요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챔버스는 완전한 자유(perfectly free)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어느 정도로 완전한 자유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모욕 가운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정도의 자유가 주어졌다니 완벽한, 퍼펙트한 그런 자유라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요된 분위기가 아닌 진정한 권위는 그분의 구속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때 작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도덕적이고 영적인 통치로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상태는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의 고백을 이끌어냅니다. 요한복음 13장 13절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제자들의 이 고백은 강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깨달은 후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아주 흥미로운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가치 없는 것들만이 가치 있는 분께 순복 하기를 거부합니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주님의 구속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주님의 권위에 완전히 순복 하면 우리의 의지는 주님 앞에 자유롭게 순종합니다. 만일 이러한 상태에서 순종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우리 인생에 불필요한 것들이겠죠.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상태는 일회적 사건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권위에 완전히 순종할 때 그것을 방해하는 본성이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챔버스는 신앙에 있어서 교육의 과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성도의 교제는 아주 중요한 것이죠. 챔버스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적인 면이 아니라 거룩한 면에서 우리보다 조금 나은 자들을 사용해 우리가 주님의 통치하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교육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지나며 우리 삶이 주님을 향한 순종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가치 있는 순종을 위해 주님은 우리를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강요가 아닌
묵상 전반부에서 자유가 강조되었다면 후반부에서는 강요하지 않으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순종이 강요된다면 하나님께서 참된 권위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노예 감독자가 강요를 통해 노예에게 순종을 이끌어 낸다면 이것이 어떻게 진정한 순종이 될 수 있겠습니까? 챔버스는 이러한 순종을 진흙탕에 빠져있는 순종이라고 표현합니다.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진정한 순종은 진정으로 주님을 만날 때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를 구속하신 그분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러므로 내가 은혜 가운데 자라나고 있다는 증거는 나의 순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순종은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주인과 노예 사이에는 참된 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위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순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동등함 속에서 시작됩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 말씀에 주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습니다. 아들이 순종한 이유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중요한 문장을 이야기합니다. 아들이 되기 위해 순종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순종은 구원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우리 안의 주님이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라는 책에서 자발적 순종을 기쁨의 단계로 끌어올렸습니다. 그 얘기를 좀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신 것과 같이 순종하자.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아들로 순종하셨다. 우리의 순종 역시 하나님의 자녀에 순종이 되게 하자. 하나님을 아들의 영, 자녀의 영으로 섬기자.
그리스도는 아들의 사랑으로 아버지께 순종하셨다. 우리의 순종이 사랑의 순종이 되게 하자. 그리스도께서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섬기신 것처럼,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을 기쁘고 아주 선한 것으로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순종하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순종, 즉 동등한 관계에서의 순종은 자녀의 영을 받은 우리가 마땅히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 아버지께 기쁘고 즐겁게 해야 하는 순종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그냥 그런 그림이 그려지네요. 여러분들은 순종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얼굴에 기쁜 모습이 나타나는가? '야 나는 오늘도 순종해야 되는구나.' 그 표정이 너무 억울하고 힘든 모습은 아닐까 아버지께 기쁘고 즐겁게 해야 하는 순종.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았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신앙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하는 순종은 자발적인가요, 강요된 것인가요?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순종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할 때 그 순종은 강요가 아닌 자발적 순종이기에 우리들에게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깊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들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의 순종에는 기쁨이 있는가, 나의 순종에는 감사가 있는가, 나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는가? 오늘 철저하게 오늘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시고 오늘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아는 이 순종이 우리들의 기쁨과 감사의 고백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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