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6월 23일| 하나님 아니면 죄 죽이기|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morning star1 2024. 6. 23. 23:31

하나님 아니면 죄 죽이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이사야 53장 3절


우리는 주님이 겪으신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견디지만 그것에 익숙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자신 안의 죄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본적인(이성적인) 관점을 취하며 본능을 통제하고 교육을 하면 서서히 하나님의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죄라는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죄는 우리의 모든 계산을 다 뒤집어엎습니다. 죄는 모든 것을 거칠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죄는 엄연한 사실이지 어떤 결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는 실제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반란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과 죄,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한 가지 문제를 철저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만일 죄가 나를 다스리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죽게 됩니다. 반대로 만일 내 안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내 안의 죄가 죽게 됩니다. 이외에 다른 궁극적인 것은 없습니다. 죄의 최악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역사에서 사실이었던 것은 당신과 나의 삶의 역사 속에서도 사실이 될 것입니다. 논리적인 차원에서도 죄의 실체를 인정해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되고 또한 우리 삶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6월 23일 하나님 아니면  죄 죽이기 이런 제목인데요.

죄의 실체

먼저 죄의 실체라는 주제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3일 동안 우리는 슬픔과 죄에 관한 짧은 시리즈를 함께 묵상할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챔버스 목사가 1917년 6월 10일 이집트의 치열한 전쟁터에 있던 군인들에게 전한 고통과 슬픔에 관한 메시지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 전쟁터의 군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고통과 슬픔의 존재가 아닐까요? 혹시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나요? 그렇다면 이 슬픔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오늘 묵상은 죄의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단지 죄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챔버스의 글입니다.
논리적인 차원에서도 죄의 실체를 인정해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되고 또한 우리 삶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도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죄의 실체를 인정할 때 우리는 슬픔에 직면하게 됩니다. 오늘 원문 제목이 슬픔의 인식(Acquaintance with Grief) 그렇게 제목을 잡은 이유이기도 하죠.
우리 인간들은 처음부터 죄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성과 본능으로 충분히 죄를 통제하고 교육해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런 생각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죄가 우리의 이런 모든 계산을 뒤집어 놓은 것이죠.
혹시 오늘 묵상을 하면서 죄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제가 너무 비관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인간의 참 악한 존재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죄의 경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사도바울 역시 그는 죄 문제로 인하여 끊임없이 고민했던 사람이죠. 어거스틴은 그의 책 [고백록]에서 참 신기하게도 그런 이야기를 하죠. 내가 젖 먹던 시절에 지었던 죄를 회개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갓난아이 시절, 남아도는 어머니의 젖을 다른 아기에게 주는 것 그것 때문에 시기하며 울었던 그 죄성. 소년시절 친구들과 함께 무리 지어 죄를 지은 모습들, 그 모든 것들을 회개하고 있어요. 어거스틴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서도 죄의 경향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던 거죠. 물론 하나님께서는 악을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선한 영역이 점점 줄어들 때, 그 안에 악한 것들의 존재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떻게 우리 인간이 100%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안에 있는 죄성, 혹은 죄의 경향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주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영접 기도를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뭔가요?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쩌면 오늘 이 묵상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있는 우리들이 죄에 대하여 '우리가 이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에서부터 오늘 이 묵상은 아주 파워풀하게 우리의 삶을 바꿔놓는 말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손봉호 교수님의 책 [나는 누구인가]에 보면 죄의 실체와 그리스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사회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우습게 본 현대인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해 있고, 그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 태도, 즉 죄의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면 현대인도 그 죄를 용서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길을 제시하셨고, 그 길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곧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 이상 현대인에게도 예수는 누구 못지않게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과학적 사고에 지배당한 현대인들은 이런 신화 같은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 현대인의 그 교만이 바로 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 바로 그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기고 현대 문명이 비관적으로 흘러간다면 현대인은 누구보다도 더 예술을 필요로 한다고 할 것이다.
죄란 무엇일까요? 챔버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죄는 엄연한 사실이지 어떤 결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는 실제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반란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과 죄,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어떤 결함으로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결함은 채우면 됩니다. 하지만 죄는 약간의 문제를 보완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죄는 아주 실제적으로 역사합니다. 죄가 우리를 다스릴 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죽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생명의 법이 우리를 다스리기 시작할 때는 죄가 죽게 됩니다. 여기서 조금 전의 어거스틴의 말과 챔버스의 말이 충돌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충돌되는 점이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악을 죄를 창조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래서 죄는 창조된 피조물은 아니지만, 선한 것이 줄어들 때, 하나님의 영역이 줄어들 때,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 그것을 악과 죄라고 이야기하니 오늘 여기 챔버스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하나님 편에 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결국 우리는 죄와 하나님 사이에 서야 되는 존재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가를 따먹은 죄를 범한 순간,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도망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다스림과 죄 사이에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떠났다면 그것은 곧 죄의 영향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죄의 정점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행하셨던 역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역사적 사실이 될 것입니다.
죄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오신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 53장 3절 말씀이죠.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주님이 이 땅에서 고통과 슬픔을 겪으신 이유가 바로 죄입니다. 주님이 나가신 고통과 슬픔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견디고 이겨나가지만 결코 친숙해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묵상에서 죄의 문제를 다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죄는 실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되고 또한 우리 삶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도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면 죄의 실체를 인정하는 일은 절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이기신 십자가의 능력을 믿을 때 우리는 기꺼이 죄를 이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우리는 죄의 실체 앞에서 '하나님 아니면 죄 죽이기'라는 사실을 직면합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 질문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죄의 실체'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습니까? 그 죄의 목록을 적어봅시다.


기도하겠습니다.
두렵고 아픈 일이지만 오늘 묵상을 통해 구체적인 우리의 죄 실체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살아가는 존재인 그것들 하나하나가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묵상을 통해 우리들의 깨닫는 것, 죄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이 죄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아프게 죄를 드러내고 기쁘게 이 죄의 구속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 오늘도 죄 한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능력을 경험하며 동행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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