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6월 22일| 하나님의 판단기준|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morning star1 2024. 6. 23. 23:13

하나님의 판단 기준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2절


이 말씀은 우연한 짐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법칙입니다. 당신이 어떠한 판단을 하든지 그 판단은 당신에게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보복과 보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원칙은 보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는 데 간교해 왔다면 당신도 그대로 흠잡힐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인생은 당신이 지불한 대로 되돌아옵니다. 이 법칙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역사합니다(시 18:25-26).
로마서 2장은 이 법칙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즉, 남을 비판하는 하는 자는 그 동일한 비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동뿐 아니라 그 가능성도 보십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성경이 언급하는 바를 믿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우리 자신도 이미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위선과 속임수와 거짓을 보는 이유는 바로 우리 마음속에도 똑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가장 큰 특징은 겸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내 안에 있는 그 모든 더러운 것들과 죄악들이 다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비판할 권한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고 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비판을 하면 그대로 당신도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제가 동료들을 판단한 대로 저를 판단하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동료들을 죄인으로 판단해 왔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우리를 판단하신다면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속죄를 통해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은 6월 22일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영원한 법칙

영원한 법칙이라는 주제로 먼저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한 법칙입니다. 챔버스는 이것을 빗나가지 않는 시험(The undeviating test)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챔버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결코 빗나가지 않는 법칙을 가지고 계시는데 각 사람이 남에게 베푼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 것과 같이 우리도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일종의 시험, 테스트와 같은 것입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시험, 테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용서하는가? 이 시험은 누구도 인간관계의 관계 속에서 피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있는데요. 이 보복(retaliation), 보상(retribution)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데 이 부분도 우리들에게 확 와닿는 그런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사전을 좀 찾아보면서 생각을 했는데 영어로 retaliation이라고 하는 이런 보복이라고 하는 이 말은 인간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원수에게 행하는 보복의 행위라면 오늘 글에서 나오는 retribution, 보상이라고 하는 것은 신적인 권위에 의해 수행되는 정의의 행위로써 응징, 우리들이 받아야 되는 보상 이렇게 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설명을 했더니 더 어려워졌나요? 오늘 말씀은 retaliation, retribution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게 참 중요하니까 여기서 잘 이해가 안 됐다면 여러분들 묵상글을 한번 보면서 잘 이해를 하고 가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상을 위한 삶의 중요한 원칙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우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은 보복과는 좀 다른 것이죠. 만일 우리가 누군가의 결점을 찾아 험담했다면, 우리도 똑같이 누군가에게 그대로 흠잡힐 것이다. 잘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우리 자신도 이미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나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위선과 속임수와 거짓을 보는 이유는 바로 우리 마음속에서도 똑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챔버스가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지 않게 하는 성품은 겸손입니다. 그러면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죄악은 이미 다 드러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비판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아가는 성도들의 공동생활에서 겸손과 비판은 늘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겸손한 공동체에서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드러나고 비판이 나빠하는 공동체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를 비판하는 혀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 혀로 인해 똑같은 심판을 우리 자신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장 8절부터 10절까지 말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 아니라

본회퍼 목사님의 [성도의 공동생활]에서도 이 비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글이에요.
이와 같이 처음부터 혀를 훈련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비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타인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판단하며 정제하는 일을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또한,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자리에 두고, 그런 식으로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형제를 자기 앞에 두신 그 모습 그대로, 형제가 완전히 자유롭게 서도록 놓아줄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시야가 넓어져서 처음으로 형제들에 대해 경탄하게 될 것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의 부유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다스리는 원리는 자기 정당화에서 나오는 폭력 행사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은 칭의에 기초한 섬김입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그 후로는 오직 섬기려고만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라면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제가 동료들을 판단한 대로 저를 판단하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동료들을 죄인으로 판단해 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역시 죄인이라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판단하시면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고 구원에 대해 아무 준비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예화인데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구원의 은혜]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복음 전도자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라는 설교를 하자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당신의 설교는 마치 범죄자들에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설교는 감옥에서나 해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그 설교자는 "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만약 감옥에서 설교한다면 그 본문으로 해서는 안 되죠. 거기서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딤전 1:15)라는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부분이죠.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말씀, 심판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하는 것, 이 메시지를 구분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판단하시기에 감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시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판단하신다면 우리가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 우리를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똑같이 비판받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품고 살아갈 묵상질문

지금 당신이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비판의 내용을 적어볼까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까요?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할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비판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누군가를 향해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우리 있는 그대로를 판단하신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이유는 그대로 판단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를 받아주심을 우리들이 기억하게 하여 주셔서 나에게 주시는 놀라운 이 은혜가 누군가에도 동일하게 임하는 것을 보게 될 때에, 누군가를 비판하기보다는 그를 향해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포용하고 또 서로 함께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좋은 우리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온전히 주께 의탁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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