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거룩|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거룩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당신이 거룩해지기를 기도할 때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기준을 맞출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거룩'을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정말로 거룩을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치러야 할 대가란 이 땅에서의 관심을 지극히 줄이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무한히 넓히는 것입니다. 즉, 거룩이란 하나님의 관점을 향한 집중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혼•육이 서로 연결된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목적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따로 구별하신 목적을 당신 안에 이루고자 하실 때,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또한 예수님처럼 당신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룩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만을 위해 자신을 따로 구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요 17:19 ) 많은 사람들이 거룩의 체험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거룩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룩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 예수님을 다스렸던 성향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에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님, 주께서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신 같이 나를 거룩하게 하소서"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에서 가장 뚜렷하고 유일한 특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닮게 만들면서 예수님과 관계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나 자신을 따로 구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매일 묵상 365 오늘은 2월 8일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거룩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두 가지의 주제를 다루게 해야 될 것입니다.
거룩이란
오늘 챔버스의 묵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나누었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챔버스의 글 중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으면 그 어려운 부분과 연관되는 이전의 제목들을 찾아가서 한번 보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2월 3일 말씀에서 복음을 위해 택함을 받는 것 그리고 택함을 받은 자들이 사명자로서 성화의 삶을 사는 것은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다루었습니다. 즉 우리가 복음으로 택함을 받은 성도로 머무르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로 기꺼이 만물의 찌꺼기가 되든지 이것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지만 구원받은 자로 쓰임 받는 것은 우리의 선택과 의지에 달린 문제다. 이렇게 우리들이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여기에서 조금 혼동이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룩한 삶을 향한 우리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었는데, 오늘 말씀해 보니까 거룩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하니 우리의 의지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저도 여기에서 많이 이렇게 묵상을 하고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해 보았는데 이렇게 구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의적 의지'와 '순종의 의지'를 구별했으면 좋겠다. 이전에 다루었던 말씀이죠. 자의적 의지는 무엇인가요? 나 스스로 거룩하게 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의지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순종하는데 순종의 의지가 있다는 거예요. 자의적 의지는 나를 거룩하기 위해서 내 맘대로 했다면, 순종의 의지는 거룩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는 것이죠. 이전에 우리가 구별된 자로 살아가기 위해 작동했던 의지와 오늘 거룩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순종의 의지는 철저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챔버스는 '거룩이란 하나님의 관점을 향한 집중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죠. 챔버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거룩을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치러야 할 대가란 이 땅에서의 관심을 지극히 줄이고 하나님을 향한 관심을 무한히 넓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의지란 자신의 거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해 온전하게 우리의 관심을 넓히는 것이 우리를 거룩으로 이끌어간다는 말입니다.
헨리 나우헨의 책 <두려움에서 사랑으로>라는 것을 보면서 저에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에요.
세상은 "시간을 잘 쓰고 있지 않으면 너는 쓸모없는 존재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와서 나와 함께 시간을 허비하자"라고 말씀하신다. 기도의 유용성과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벌이면 우리는 기도 중에 홀가분하게 하나님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무용한 시간이 나를 변화시키고 주변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한다. 기도는 다른 일들로 바빠지는 대신 하나님과 함께 '한가'해지는 것이다.
저는 여기에서 한가해지는 것이다. 이 표현이 너무 멋지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꺼이 우리 삶에서 거룩을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를 지불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주님과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한가하게 보내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우리 삶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계속해서 주장하는 친밀한 관계가 여기에서도 핵심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깊이 묵상해 보세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과의 친밀함이 깊어질 때 농부이신 아버지께서는 자연스럽게 가지치기를 하세요. 우리가 뭔가를 희생하고 아프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은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거룩해지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관심을 무한히 넓혀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여정으로
1월 31일 묵상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정리하면 오늘 말씀이 잘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거룩이란 1월 31일 말씀에
우리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결과입니다. 사역자들이 실패해서 쓰러지는 이유는 그들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을 보이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스스로 거룩해지려 한 노력들이 우리를 실패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우리에게 거룩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왜 우리로 하여금 거룩의 여정으로 들어오라고 권면할까요?
진정한 경건과 거룩의 의미를 제대로 알 때 우리에게서 거룩한 여정이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스스로 거룩해지려는 것이 될 때 의지는 위험합니다. 이러한 거룩함에서는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가 드러나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이죠. 그러므로, 진정한 거룩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므로 예수님을 다스렸던 성향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대가로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어요. 챔버스의 오늘 묵상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순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려는 의지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성화의 길로 들어섭니다. 우리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 이런 말이죠. 챔버스의 글을 조금 인용합니다.
성령의 역사에서 가장 뚜렷하고 유일한 특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닮게 만들면서 예수님과 관계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일 것 같아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거룩과 경건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길거리를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쳐서 피가 흐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이마에 피를 흐르는 사람들을 보면 '야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나중에는 경건하다는 말을 너무 듣고 싶었던 사람들 중에 아예 집에서 나오기 전에 이마를 찧어서 피를 흘리며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거룩하게 보이지만 주님의 거룩함의 성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죠. 진정한 거룩은 예수님과 관계없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전능자의 그늘>, 짐 엘리엇의 전기에 나오는 순종의 의미를 생각하며 고민했던 그의 글을 조금 읽어드릴게요.
나는 거룩한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즉 보상이나 외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해야 한다. 율법서가 늘 내게 일깨우는 바지만 계명을 지킬 때도 계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지켜야 한다. 그럴 때 나는 의롭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이 의로우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성품이 내 품행을 결정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기꺼이 거룩의 여정에 뛰어들면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자로 빚어 가십니다.
오늘을 살아낼 묵상질문
지금 우리가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 예수님의 성품과 관계있는 것일까요?
거룩과 예수님의 성품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 앞에 그런 기도를 할 때가 참 많이 있었습니다. 주님, 우리를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그 거룩이 나의 의를 드러내는 거룩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에게서 예수님의 성품이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진정 이 거룩함으로 뛰어드는,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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