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예수님의 빈곤한 사역|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예수님의 빈곤한 사역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요한복음 4장 11절
우물이 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안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우물이었습니다. 인간 본성의 깊이, 당신 안에 있는 우물의 깊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예수님의 사역을 빈곤하게 했기 때문에 주께서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것은 아닙니까? 당신의 마음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우물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1) 이때 당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 이 우물은 깊습니다.
주님이라도 이 고통의 우물에서는 평강과 위로를 길러낼 수 없으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 본성의 우물에서 아무것도 길어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생수를 길러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부탁할 영역을 제안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여전히 전능하고 거룩하신 분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필요로 하는 그 일이야말로 주님께서 하실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주께서 전능한 분이심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주님의 사역을 빈곤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사역이 빈곤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불신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동정을 원할 뿐, 그분을 전능자로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형편없는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전능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겉모습과 경험은 있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 철저하게 자신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이 오면 주의 사욕을 빈곤하게 압니다. "그렇지. 이것 보라구. 주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시잖아." 그리고 깊은 우물에 내려가 자신의 힘으로 물을 길어보려고 애씁니다. 결국 "이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어"라고 체념한 후 안주합니다. 이러한 불신앙의 자리에 머물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주님을 바라보면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분명히 당신의 미완성의 우물은 깊습니다. 그러나 우물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매일 만나 365 오늘은 2월 27일 예수님의 빈곤한 사역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두 개의 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빈곤함
오늘 말씀의 제목이 예수님의 빈곤한 사역이라고 되어 있는데, 제가 말씀을 묵상하며 보니까 실제 의미는 주님의 사역을 빈곤하게 만드는 우리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챔버스의 말로 시작합니다.
주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주님의 사역을 빈곤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사역이 빈곤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불신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동정을 원할 뿐, 그분을 전능자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말씀과 동일합니다. 어제는 이 여인이 물을 기를 그릇도 없는 주님을 의심했다면, 오늘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생수를 가져다줄 능력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왜 그렇게 절망적으로 느껴졌을까요? 아마도 깊은 우물만큼이나 자신이 깊은 고통을 받고 있음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당했던 고통을 누가 이해하며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녀의 절망은 온전히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깊은 우물에서 건져 올릴 것이 없습니다. 아니, 이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고통으로부터 어떤 선한 것을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그녀에게 바로 옆에 계시는 주님은 어떤 힘과 위로도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하늘로서 내려오는 생수를 말씀하고 계신데, 이 여인은 자신이 기를 수 없는 우물을 생각하니 도대체 답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빈곤함, 아니 주님의 사역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돌아가신 하영조 목사님이 쓰신 책 <힘은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에 보면 참된 힘에 대한 몇 가지의 글들이 있는데, 제가 두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참된 힘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위탁되는 것입니다. 힘이란 일정한 시간에 절대 힘의 소유자로부터 빌려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탁받았던 힘을 끝까지 자기의 영원한 소유처럼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최후는 비참하며 말로는 허무합니다. 참된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절에 보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의 그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본 자마다 하나님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하니 제자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걱정이 찾아왔겠습니까? 부활하실 주님,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하니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은 걱정거리일 뿐입니다.
오늘 말씀의 포인트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없다면 십자가는 고통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음 권세를 이기지 않으셨다면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없는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빈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그분을 전능자로 믿지 못하는 신앙은 늘 빈곤에서 허덕일 것입니다.
그분을 빈곤함에 가두지 말라
전능하신 주님을 알지 우리는 형편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맙니다.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되면 우리의 경험을 가지고 '거봐 주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라고 말할 뿐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힘으로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려 하지만 그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의 노력이 끝나는데 체념하게 되고, 체념에 안주하게 되면 불신앙이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이때 우리가 빈곤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분명히 당신의 미완성의 우물은 깊습니다. 그러나 우물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을 빈곤함에 가두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사역을 한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성령의 사역자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종종 마음의 감동으로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이 자꾸 성령님의 음성을 제한하려고 할 때가 있지 않나요?
God in a Box(상자 안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범위를 임의로 제한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내 사고와 인식의 범위 안에 하나님을 가두는 것이 마치 내가 들 수 있을 법한 박스에 하나님을 넣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혹시 보아뱀 들어보셨나요? 야생에서 자라는 보아뱀은 평균 13 피트 정도 그러니까 한 3.9m까지 자란다고 하죠. 기록된 가장 큰 뱀은 18 피트, 5.4미터까지 자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메리카에서는 이 보아뱀을 사람들이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데, 감금된 경우 평균 6~ 8피트, 자연에서 자라는 것보다 한 반 정도 사이즈밖에는 자라지 못한다고 합니다. 감금된 보아뱀은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풍성한 먹이를 먹으며 공급받을 텐데도 그렇게밖에 자라지 못하는 거죠. 야생에 있을 때 보아뱀은 그들이 성장하는 데 제한이 없습니다. 집안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일 경우 딱 성장의 크기는 아쿠아리움 사이즈에 불과하고 거기에서 멈춘다고 하죠. 이 보아뱀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제한된 우리의 경험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들이 한 주일에 한 시간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한 20분 정도 아침에 경건 시간을 통해 경험하는 하나님, 그런 사이즈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No put God in a Box. 하나님을 우리의 상자 속에 가두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하나님을 우리 사고의 틀에 가두는 것은 무서운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신 분이십니다.
오늘을 살아낼 묵상질문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요?
마음을 활짝 열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바라보십시오.
짧은 기도로 옥상을 마무리합니다.
오, 하나님.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크심을 깨닫게 하소서. 저희가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시는, 저희와 비슷한, 작은 하나님으로 아버지를 오해하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저의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도되는 것이 더 좋은 일입니다. 저희로 하여금 아버지께 아무것도 요청하는 것이 없게 하소서. 저희 스스로가 선악을 결정하게 내버려 두지 마소서. 그것이 병이든 굶주림이든 헐벗음이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선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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