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2월 1일| 하나님의 부르심|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morning star1 2024. 2. 1. 15:51

하나님의 부르심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고린도전서 1장 17절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의미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의 실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거룩을 복음선포의 주요 목적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구원이나 거룩의 체험을 말할 뿐, 결코 개인 체험을 선포의 목적으로 삼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구원이나 거룩을 선포하도록 의탁받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탁받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요 12:32)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성자로 만들기 위해 구속에 고난을 당하셨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주장은 진리를 모르는 말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속에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온 세상을 구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잘못된 것들을 고치시고 다시 새롭게 하신 후에 하나님 보좌 앞에 두시기 위한 것입니다. 구속이 각 개인에게 체험될 수 있다는 사실은 구속의 실체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체험이 구속의 목표는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면, 구원 및 거룩을 위한 우리의 끝없는 요청으로 인해 얼마나 피곤하고 귀찮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하나님을 조릅니까? 우리가 복음의 실체의 반석에 접할 때만이 더 이상 사소한 번민으로 하나님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 속에서 한 가지 열정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음의 고통과 환멸과 환난을 환영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마저 그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의 복음을 향해 요동함이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묵상 365 오늘은 2월 1일 말씀입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잘 따라와 주신 여러분들 감사하고 2월 1일부터 시작되는 이 말씀이 또 2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65일 우리들이 잘 묵상하며 승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부르심. 오늘 말씀 역시 두 가지의 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정한 부르심은 무엇인가

오늘 묵상은 챔버스가 경험했던 4년간의 영적 암흑기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이 암흑기는 챔버스가 세상 속에 방황하며 하나님을 떠났던 시간이 아닙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이 시기 동안 챔버스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역했고 하나님께 헌신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민이 있었어요. 바로 자신의 거룩함에 대한 문제였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헌신하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거룩함에 대한 문제, 그에게 늘 부담이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거룩함을 위해 싸우는 자신의 모습에 더욱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챔버스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구원이나 거룩을 선포하도록 의탁받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탁받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지 어떤 사역을 수행하거나 개인의 성화를 이루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챔버스는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달 이 말씀을 묵상하며 지나오는 동안 혹시라도 노파심에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매일 묵상을 통해 우리들이 어떤 단편적인 지식에 지식을 얻는 것에 우리들의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챔버스가 지금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챔버스는 거룩함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거룩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명이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죠. 때때로 우리의 신앙에서 거룩을 강조할 때도 사명을 강조할 때도 은혜를 강조할 때도 자유 의지를 강조할 때도 있습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우리들에게 필요하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고백을 통해 두 가지를 아주 명백하게 대조해서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세례를 베푸는 일 또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세례를 베푸는 일이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라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속의 사역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전자의 일, 세례를 베푸는 일은 자신의 성취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후자의 일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챔버스가 고민했던 것은 복음을 전하기에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좀 더 거룩하고 좀 더 완전하다면 좋을 텐데 어쩌면 좀 더 완벽한 사역자의 모습을 꿈꾸고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성화가 목적이 되어 버린다면 과연 사명을 감당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이렇게 노력해서 거룩을 이루었다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구속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성취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이 되면 다른 것을 높이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구속의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챔버스가 얻었던 해결은 바로 사도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나를 성자로 만드시기 위함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속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어제 묵상에서 거룩에 대한 염려 때문에 찾아올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거룩해서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더러워지려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할 수치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진정한 사명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거룩함을 선포하는 것도, 자신이 거룩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이러한 행위들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장애가 된다거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보다 우선된다면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죠. 오늘 말씀도 혹시 여러분들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어제 말씀을 다시 한번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 묵상 중 일부를 기억해야 될 문장을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우리의 거룩은 우리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구속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선함에 둔다면 시험이 올 때 믿음은 무너집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온 세상을 구속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구속은 이 세상 사람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체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음 이어 구속의 능력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챔버스의 말에 우리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하게 우리의 자신을 들여다봅시다. 챔버스가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체험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얼마나 사랑이 부족하고 용서가 부족하고 죄의 쉽게 넘어지고 작은 유혹 앞에서도 하나님을 외면하는 존재인지를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챔버스는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조르고 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피곤하실까, 하나님을 괴롭히는 일이 아닐까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인생의 문제이니까. 그래서 챔버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바울의 인생 속에서 한 가지 열정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의 마음에 고통과 환멸과 환란을 환영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마저도 그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의 복음을 향해 요동함이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열정으로 인해 온전하지 못한 자신의 문제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가 죄에 대해 무감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죄에 대하여 연약하고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부터 10절 이러한 사도 바울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어떤 체험이나 기적을 구하며 자신에게 찾아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그런 고난조차도 감수하며 예수의 흔적을 전하기 위해 살았던 사람입니다.
브라질의 대주교였던 덤 헬더 까마라 주교가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려면 필요한 것이 단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실제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살면서 그것을 전파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복음의 실체를 알면 사소한 일로 하나님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묵상 질문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보면 어떨까요?

혹시 우리가 지금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을 귀찮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나의 거룩을 이루기보다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일들로 주님을 귀찮게 하지 않는 사람 사람들 예수의 흔적을 전하기 위해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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