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11월 12일| 거듭남 이후의 변화|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morning star1 2024. 11. 12. 20:00
거듭남 이후의 변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당신은 자신의 영혼 구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구원의 체험이란 당신의 실제 삶에서 모든 것이 정말로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과거의 사물을 보던 대로 보지 않습니다.  당신의 소망은 새롭게 되었으며 옛것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구원 체험의 진실성에 대한 시금석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치관을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옛것들을 추구하면서 위로부터 났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거듭났다면 성령은 변화를 당신의 실제 삶과 생각 가운데 나타내실 것 것이며, 위기가 찾아왔을 때 당신은 당신 안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로 인해 가장 놀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그 변화를 이루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이 온전하고 놀라운 변화가 바로 당신이 구원받은 영혼이라는 증거입니다. 나의 구원과 성화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예를 들어, 나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빛 가운데 설 수 있습니까? 아니면 손을 저으며 당황스러워합니까? 성령에 의해 내 안에 이루어진 구원은 나를 완전히 자유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같이 내가 빚 가운데 행하는 한, 주님께서는 내게 책망할 것을 보지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주의 생명이 내 의식뿐 아니라 내 의식보다 더 깊은 곳까지 모든 곳에 두루 영향을 주며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거듭남

우리를 종종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있습니다. 스스로 거듭났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진정 거듭난 삶을 살고 있는가?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거듭났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 고린도 우서 5장 17절은 거듭남에 대하여 아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 즉 이전 사람은 사라지고 아주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이러한 새로움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챔버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구원의 체험이란 당신의 실제 삶에서 모든 것이 정말로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과거의 사물을 보던 대로 당신의 소망은 새롭게 되었으며 옛것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챔버스가 이야기한 이러한 거듭남의 증거는 다른 말로 하면 세계관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프레임이라는 말이죠. 세계관이란 바로 세상을 보는 관점, 즉 프레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소망이 자신의 소망이 됩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다시 시금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금석이란 진위를 가리는 기준입니다. 이전 묵상에서 챔버스는 일상의 지루함이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가리는 시금석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했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이라고 말했던 것이죠.
거듭남의 진실성을 가리는 시금석은 가치관의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거듭나기 이전과 이유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아직도 옛것을 추구하고 살아가면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변하지 않으면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거듭나기 전 기도가 자기중심적인 내용이었다면 거듭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용서받기 위해 기도했다면, 거듭난 성도는 형제와 자매를 용서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이 가장 놀라야 할 것입니다. 챔버스의 글이 흥미롭습니다.
만일 당신이 거듭났다면 성령은 변화를 당신의 실제 삶과 생각 가운데 나타내실 것이며 위기가 찾아왔을 때 당신은 당신 안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로 인해 가장 놀라게 될 것입니다.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삶의 고난과 위기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 오히려 감사 기도를 드리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기대하며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 말입니다. 이것이 심정으로 거듭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원문 제목이 변화된 삶(The transfigured life)입니다. 여기서 변화,  transfigured이 '변화된'이라고 하는 말은 변화산에서 변모된 주님의 모습을 말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육적인 모습이 가려지고 신적으로 변모된 모습 말입니다. 분명히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우리도 거듭남의 구원을 체험했다면, 분명히 변모된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능력으로 왔을리 만무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가 찾아왔다면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빛 가운데 설 수 있습니까? 아니면 손을 저으며 당황스러워합니까? 성령에 의해 내 안에 이루어진 구호는 나를 완전히 자유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심같이 내가 빚 가운데 행하는 한 주님께서는 내게 책망할 것을 보지 못하십니다.
진정으로 거듭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면 주님께 책망받을 만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러한 기준에 합당할까요? 바로 사도바울조차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일까?'라고 고백했으니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거듭난 후 사도로서 사역을 감당할 때 한 고백입니다. 그가 가장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자신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해 고민했던 것이죠.
그런데 저는 오늘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 책망받을 것이 없다고 해서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 아래서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고 고민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며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죄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책망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신앙의 역설이죠. 거듭난 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볼 때 도리어 하나님께 책망받을 만한 것이 없다니 말입니다. 당신에게는 그러한 거듭남의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자신이 보여서 하나님께 도우심을 요청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당신이 빛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점점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유함을 느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을 원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 아니실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빛 가운데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괴로워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고민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합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당신의 삶에 거듭남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성이 보여 괴롭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빛 가운데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챔버스의 묵상을 통해 우리들에게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거듭납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바라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 거듭난 자에게 고민이 시작되는 것, 그것이 정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고민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런 고민이며 이 고민을 통하여 우리가 점점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점점 더 나은 사람으로 고쳐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거듭남은 우리 가운데 완전함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고 거듭남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시고 오늘도 우리들이 고민 가운데 살아가지만 고민을 토하여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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