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10월 22일| 성령의 증거 하심|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morning star1 2024. 10. 23. 20:02
성령의 증거하심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로마서 8장 16절)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흥정하려는 마음을 가지려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는 일을 수행하기 전에 증거를 원합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실까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당신이 완전히 죽게 내려놓지 않는 한 당신 자신이 주님의 증거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다 내려놓으면 하나님은 자기를 증거하십니다. 주님은 당장이라도 당신 안에 있는 그분의 속성을 증거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실체가 아닌 다른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감상적 감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구속에 근거해 당신을 내려놓고 놓고 주제넘게 따지지 않는, 즉시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주십니다. 당신이 논리와 주장을 내려놓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증거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시게 했던 우리 자신의 무례함에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지 알고 싶으면 주께서 구원하시도록 맡기든지 아니면 주께서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하십시오. 이 사람 사람의 말을 인용하지 말고 마태복음 11장 28절을 시도해 보십시오.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주께로 오십시오.
만일 당신이 악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도하십시오. 성령은 주님의 구속을 증거하십니다. 성령은 다른 어떤 것도 증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논리를 증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연스러운 상식적인 결정을 내린 후에 성령의 증거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자신의 속성 및 구속의 사역을 증거하실 뿐 절대로 우리의 이성을 증거해 주지 않으십니다.
만일 성령으로 우리의 이성을 증거하게 하려고 시도할 경우 당연히 어둠과 혼돈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어리석음을 내버리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께서 성령의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



 

흥정하지 말라

오늘 묵상에서 중요한 단어 하나가 등장합니다. 영어로 barter라는 말인데 물물 교환하듯이 흥정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챔버스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문제 있는 것 가장 위험한 태도가 성령님과 흥정하려는 경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령님과 흥정할까요? 챔버스의 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는 일을 수행하기 전에 증거를 원합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으실까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당신이 완전히 죽게 내려놓지 않는 한 당신 자신이 주님의 증거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문장을 읽으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성령님의 증거를 요구할까요?
챔버스가 당신이 완전히 죽게 내려놓지 않는 한이라고 말하는데 저에게는 이렇게 이 부분이 이해가 됩니다. 사실 주님의 일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 안에 믿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있으나 하나님의 일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
사사기 6장에 사사 기드온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드온을 부르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수용할 믿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하죠. 다른 곳은 다 마르고 양털만 적게 해달라고 또 다른 곳은 다 적고 양털만 마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양털 시험을 합니다. 증거를 통해 기드온은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까지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용하실 수 없었습니다.

오늘 묵상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양도하지 않는 한 성령께서 우리 삶에 확실하게 증거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확실한 증거를 원하는데 증거를 얻는 방법은 두 손 들고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챔버스의 표현입니다.
당신이 구속에 근거해 당신을 내려놓고 주제넘게 따지지 않는, 즉시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주십니다.
당신이 논리와 주장을 내려놓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증거하십니다. 여기에 신앙의 신비가 존재한 우리는 증거를 보여주시면 믿고 따르겠다고 말하지만 성령께서는 먼저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아주 유명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알고 싶다면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지 알고 싶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고경환 목사님이 쓴 나를 응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약해서 제가 이야기를 할 텐데 이야기를 오늘 묵상과 연결해 보면 어떨까요?
어느 바닷가에 갈매기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갈매기는 바닷가에 버려진 썩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물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갈매기의 뒤를 따라 올라가죠 썩은 물고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다가 움켜쥐고 있던 썩은 물고기를 바다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일제히 그것을 쫓아 바다 쪽으로 날아갑니다. 그때 갈매기는 비로소 푸른 창공이 온통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움켜쥔 썩은 물고기를 포기하는 순간 드넓고 푸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작고 하찮은 것을 포기한 순간 큰 것이 갈매기의 눈에 들어온 것이죠.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없습니다. 죽게 온전히 내려놓는 자들에게 보이는 증거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성령은 주님의 구속을 증거하십니다.
성령은 다른 어떤 것도 증거하지 않으십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의 이해와 상식 그리고 논리를 증명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의 구속을 증거하실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상식적인 결정을 내린 후 성령께서 증거해 주셨다고 착각하여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성령님이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증거하시는 분이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어두운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금식을 선포하거나 작정 기도를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 기도가 자신의 주장을 이루거나 뒷받침하는 증거를 얻을 때까지 지속된다면 혼란은 제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금식은 내가 원하는 욕망을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작정은 내 뜻을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루의 기도를 통해 열흘의 생생한 사역과 쓰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상식을 여전히 구하고 있다면 성령님은 어떤 증거도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상식으로 성령의 증거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는 의지를 내려놓을 때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진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당신은 증거를 보여달라고 기도합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챔버스는 우리들에게 성령님과 흥정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양도하고, 포기할 때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생생하게 역사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지만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사역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욕심과 생각과 뜻을 내려놓지 않을 때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고 있음을 우리의 욕심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셔서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그 어떤 것 작은 부분 하나일지라도 성령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는 경험이 있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의 내려놓음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체험케 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를 온전히 붙잡아 주실 것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