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1월 19일| 비전과 어둠|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morning star1 2024. 1. 19. 08:56

비전과 어둠

해질 때의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창세기 15장 12절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비전을 주실 때마다 그를 주님 손에 어두운 그늘에 두십니다. 이때 성도의 의문은 가만히 듣는 것입니다. 빛이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어둠이 있습니다. 이때는 들어야 합니다.
창세기 16장에 아브라함과 하갈 사건은 어둠이 임했을 때 하나님께서 빛을 보내실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오히려 사람의 충고를 듣고 행한 불신앙의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신 후 어둠이 따라오면 기다리십시오. 만일 주님의 때를 기다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주께서 주신 비전에 합당하게 만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인간 스스로 이루어 보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13년간의 침묵의 기간을 지냈으며 그동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침묵의 기간은 불쾌한 기간이라기보다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절대로 기쁨과 확신으로 들뜨지 마십시오. 가만히 주님을 기다리십시오(시 50:10~11).
아직도 육체를 신뢰합니까?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초월하신 분만 신뢰하십시오. 나의 확신이 책이나 기도 혹은 영적 체험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의 확신은 오직 하나님 그분께만 있어야 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엘샤다이. 우리가 철저하게 훈련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실제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실제가 되실 때 사람들은 그림자가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여 서 있는 성도는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전혀 요동하지 않습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19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비전과 어둠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역시 두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1. 어둠의 시간에 '기다림'

비전과 어둠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챔버스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빛이 강하기 때문에 어둠이 올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큰 비전을 받는 장면입니다. 아시죠.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큰 축복을 하시고, 심지어 400년 이후에 일어날 큰 민족을 이룰 것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그러나 놀라운 비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후에 13년 동안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큰 비전 이후에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어둠의 시간입니다.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비전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의 충고를 듣고 행한 불신앙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잘 아는 이야기죠.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자손을 얻게 된 이야기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겠다고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대하여 챔버스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본문을 읽어드릴게요.
아브라함은 13년간의 침묵의 기간을 지냈으며 그동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침묵의 기간은 불쾌한 기간이라기보다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절대로 기쁨과 확신으로 들뜨지 마십시오. 가만히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시고 어둠의 시간을 지나가게 하시는 때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훈련의 시간, 아니 종종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최고의 훈련이 됩니다. 훈련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의 때에는 제대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소설가 백영욱 씨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라고 하는 책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진짜 별을 보기 위해서는 어둠에 적응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 밤하늘 팀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의 눈이 별을 보기 위해 적합한 상태가 되려면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눈의 초점이 어둠에 익숙해질 최소한의 시간이다. 하지만 별을 보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둠의 시간을 지나간다는 것은 우리가 억지로 빛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릴 때, 어느 순간 늘 거기 있었던 더 밝은 부분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요? 이 어둠의 시간 동안에 타인의 충고를 받거나 다른 세상 지식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이때 성도의 의무는 가만히 듣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듣는 것 기다리는 것이죠.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어둠의 시간을 지날 때 잠잠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훌륭한 믿음입니다.

2. 그리고 어둠의 시간에 하나님 신뢰하기

챔버스가 묻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신뢰하는가?
그를 인용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확신은 오직 하나님 그분께만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훈련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실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묵상책에 영어와 한글이 같이 되어 있을 텐데 똑같은 말인데 저한테는 이 말이 확 와닿더라고요. to know that God is real, 하나님의 실재를 아는 것 오늘 하루 기억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가장 분명하게 실제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 혹은 우리가 읽은 훌륭한 책, 기도하면서 경험한 영적 체험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도 실재가 아닙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훈련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실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실제가 되실 때 사람들은 그림자가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여 서 있는 성도는 그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전혀 요동하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지나야 했던 날들 그리고 지루하게 한없이 기다려야 했던 순간들도 참 의미가 있습니다. 그 시간들을 통하여 우리가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이런 얘기 들어보셨을 거예요. 여러 가지 음식이 있을 때 음식을 맛있게 먹는 법, 여러 가지 과일이 있을 때 과일을 맛있게 먹는 법, 케이크가 여러 종류가 있을 때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아주 간단하지만 어려운 방법입니다. 가장 맛이 없는 것 가장 당도가 낮은 것을 먼저 먹는 것입니다. 맛있는 것 당도가 높은 것을 먼저 먹으면 그다음의 맛을 느끼지 못하죠.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을 유보하고 참는 훈련을 해야 끝까지 즐거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어둠의 시간 동안 우리는 이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니 어둠과 비전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기다림을 통해 우리는 성화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시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13년간의 기다림, 다윗이 겪어야 했던 13년 동안의 도망자 생활 그리고 요셉이 애굽땅에서 겪어야 했던 13년의 종살이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필요한 시간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덜 좋아해서 겪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연단을 위해 세우시는 필수적인 코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어둠의 시간을 지날 때 실망하거나 요동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혹 어둠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기다림의 시간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짧은 기도로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주여, 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여, 우리와 같이 행하시며 또 주무시지 않고 또 멀리 가시지 않으심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주님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서 살아라.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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