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1월 15일| 당신에게는 당신의 무덤이 있습니까 | 주님은 나의 최고봉(김병삼 목사님)

morning star1 2024. 1. 15. 12:04

당신에게는 당신의 '무덤'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6장 4절


그 누구도 '옛사람이 죽는 무덤'을 지나지 않으면 온전한 거룩의 체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죽음의 위기가 없다면 거룩은 단지 환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무덤'이 있어야 합니다. 이 무덤만이 부활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부활입니다. 부활 생명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생명은 오직 한 가지 목표, 곧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 그분과 하나가 됩니다.
진실로 죽음의 마지막 날들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감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지막 죽음을 체험했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흥분 가운데 죽을 수 없이 죽음이란 당신의 존재가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심과 간절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자세를 멈추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에 동의합니까? 우리는 묘지를 스쳐 지나가지만 죽음으로 가는 것만은 언제나 거부합니다. 죽는 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롬 6:3)" 죽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무덤이 있습니까? 아니면 죽은 것처럼 당신의 영혼을 속이며 거룩한 게임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인생 속에 마지막 날로 기록된 때와 장소가 있습니까? 이 장소는 고통스럽지만 예외적으로 감사한 기억으로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그때지요 바로 내가 무덤에 들어간 날이며 하나님께 항복한 날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당신은 자연스럽게 거룩에 입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덤'입니다. 지금 무덤을 지날 의향이 있습니까? 오늘이 이 지구상에서 당신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나님께 동의하겠습니까? 그 동의의 순간은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오늘 15번째 시간입니다. 두 주가 지나갔는데요. 두 주를 지나면서 또 오늘 3주째 이 묵상을 시작하면서 이제야 저도 익숙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두 주를 잘 따라오셨어요. 이제 조금 더 오스왈드 챔버스에 대한 익숙함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묵상을 하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제목은 "당신에게는 당신의 무덤이 있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역시 대지를 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죽어야 합니다

챔버스의 글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게 있습니다. 이 사람 생각이 너무 깊다, 이렇게 고뇌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에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그런데 저에게도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고뇌하며 살았기 때문에 끝까지 훌륭한 신앙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구나,  순종하는 삶은 어느 날 한 번의 영적 체험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영적 고뇌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죽음, 참된 신앙으로 챔버스는 이 죽음을 보고 있습니다. 챔버스의 글을 조금 읽어드릴게요.
그 누구도 '옛사람이 죽는 무덤'을 지나가지 않으면 온전한 거룩의 체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죽음의 위기가 없다면 거룩은 단지 환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무덤이 있어야 합니다. 이 무덤만이 부활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주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부활입니다. 부활 생명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참 어려운 부분인데 챔버스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는 노력조차도 죽어야 한다.'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죽음이라고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말씀에 근거해 본다면 주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 그런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때 우리는 나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부인하게 되고, 우리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받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표현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부인. 진정으로 자기를 부인한다고 하는 것은 이 부분도 조금 어려운 얘기가 될지 몰라요. 선한 의지도 부인하는 것이다. 챔버스의 글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선함 때문이 아님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참다운 자기 부인이 가능한 것이죠.
어떤 선교사님의 글이 저에게 참 인상적이었던 때가 있습니다. 이런 물음을 던졌어요. 왜 지렁이가 발견 꿈틀대는지 아십니까? 답은 이렇습니다. 아주 꽉 밟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들에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감정, 성냄, 때론 분노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죽지 않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면서도 우리들 속에 찾아오는 감정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챔버스는 무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죽어서 자아를 장사 지낸 무덤의 흔적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들에게서 온전한 순종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죠. 진정한 죽음은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라는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도 계획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계획이란 오로지 주인에게 달려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챔버스가 이야기하는 순종이죠. 우리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주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지 않는 신앙은 단지 허상일 뿐입니다.  

2. 무덤이 있는가

두렵지만 아주 직설적인 질문입니다. "당신에게 무덤이 있습니까?"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무덤과 또 거룩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챔버스에게는 이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영적 암흑기라고 불리는 4년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챔버스가 깨닫게 된 거죠. 거룩해지려는 노력이 자신을 절대로 거룩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 자기의 노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동기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우리가 거룩해지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자신을 드러내려는 위선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전적으로 하나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이해되는 순간, 그렇게 강렬히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지고 삶이 진정한 성화의 단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안병무 목사님이 했던 참 멋진 이야기가 있어요. '진정한 사랑이란 해야만 되는 사랑이 해지는 때 해야만 되는 사랑이 해지는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오늘 이 거룩이라고 하는 말에 제가 요렇게 대입을 해 보았습니다. '진정한 거룩함이란 거룩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때. 그것이 진정한 거룩이다.' 챔버스는 이것을 무덤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또 이런 것도 가능할 것 같아요. "존재의 정지!" 우리의 무덤에서 우리의 존재가 죽습니다. 정지되는 거죠. 나의 의지가 정지되고 완전한 항복이 이루어지는 상태 우리가 무덤 속에 들어가는 날 이것이 바로 항복의 순간입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합니다. 우리가 만약 주님을 볼 수 있었다면 2000년 전 공생애를 다니시는 주님이 행하셨던 기적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던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그렇게 믿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주님을 붙들고 높은 자리를 달라고 다투었던 것을 우리들은 보게 됩니다. 스스로 거룩해지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노력은 제자들 사이에서 다툼을 낳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다툼을 경험한다면, 이와 별반 다른 이유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항복하는 순간 스스로 높아지거나 거룩해지려고 애쓰지 않으면 다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자아가 죽을 때 비로소 우리의 의지가 거룩해집니다.
그래서 챔버스는 우리들에게 확실한 무덤이 있는가 묻고 있는 거죠. 챔버스의 말로 들려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당신은 자연스럽게 거룩에 입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덤입니다. 지금 무덤을 지날 의향이 있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무덤에 들어갈 의향만 있다면, 우리의 의지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향해 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우리의 의지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것의 실제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짧은 기도로 묵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를 날마다 깨지게 하소서. 깨져서 깨어나게 하소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하소서. 내가 지금 없어져도 하늘땅 사이에 일 없음을 알게 하소서. 나를 버리면 자유롭고, 나를 놓으면 편안하고, 나를 비우면 넉넉한 것을 알았습니다. 나만 벗으면 모든 일이 물처럼 쉽게 바람처럼 시원하게 되어갈 것입니다. 하나님, 내 생각과 감정과 행동 속에서 나를 빼어주소서.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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