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순종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킵니까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누가복음 23장 26절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면, 우리에게도 희생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도 우리 때문에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긴장이 발생합니다. 주님을 깊게 사랑하면 그분을 향한 순종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순종이란 희생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렇게 빈정댑니다. "이것이 기독교란 말이지?" 우리는 이때 이 고통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이러한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희생이 지불되도록 그냥 두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교만'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나는 절대로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피해를 주지 않을 생각이야."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오직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보다 다른 그 어떤 관계를 더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침체는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할 때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목적과 너무나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간에 당장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당신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충성스럽게 주님께 충성하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길을 택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을 택할 경우 우리는 잠깐 그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는 근심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의 순종으로 인해 마음의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친히 돌보실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함으로 인해 발생될 결과들에 대해 주님께 이런저런 요구 구를 하지 마십시오.
1월 11일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365, 11번째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묵상의 제목은 '나의 순종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킵니까' 그리고 오늘 말씀 역시 두 개의 대지로 나누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순종으로 인한 인간관계
오늘 말씀의 목상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의 삶에서 쉽게 부딪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순종의 문제가 나 개인의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향 단순한 영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순종하는 것은 좋은데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신앙에서 고민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면 이런 고민의 순간에 우리의 순종을 거둬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계속 순종해야 할까요? 챔버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주님을 깊게 사랑하면 그분을 향한 순종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순종이란 희생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계획에 차질을 가져옵니다. 인간적인 '교만'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나는 절대로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피해를 주지 않을 생각이야'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오직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보다 다른 그 어떤 관계를 더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순종으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혹시 우리를 비웃지 않을까요? 너는 누구를 힘들게 하면서도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으냐라고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비난을 받을 때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마음속에 찾아오는 생각이죠. "이렇게 내 자존심을 구겨가면서까지 순종 뭘 해야 돼." 이런 부분에 대해서 챔버스는 아주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과의 관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순종으로 인한 긴장 관계를 우리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스왈드 챔버스에 주님은 나의 최고봉 365개의 묵상을 계속 보면서 놓지 말아야 될 중요한 줄기가 하나 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가 이 순종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깊게 고민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이 순종의 길을 갔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발견해야 합니다.
챔버스는 결혼하기 전까지 일정한 보수를 받지 않고 사역을 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고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는 돈에 구애받지 않았다는 거죠. 더구나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그의 아버지는 어려운 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가족들을 어쩌면 부양해야 되는 어느 정도의 책임도 챔버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목회자였던 아버지가 한 번은 챔버스에게 돈을 부쳐달라고 요청을 했고 챔버스는 이렇게 답변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베풀고 있는 영원한 도움에 비하면 돈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버지는 천국에 가서 사람들이 멸시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실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받았을까요? 결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챔버스에게 있어서 순종의 길에는 타협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척 어려운 긴장 관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챔버스뿐만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을 복상하는 우리들에게도 우리들의 신앙에 있어서도 이 문제는 한번 다루고 넘어가야 되는 그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 줄 노트
순종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순종하고 하나님께 맡기기
순종으로 인해 야기되는 긴장 관계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영적 침체를 경험합니다. 그렇죠. 우리들이 많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긴장 관계는 긴장 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순종할 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심각한 영향을 주기 시작할 때 우리로 하여금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혼자 감당해야 될 몫으로 생각한다면, 영적 침체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들에게 아주 좋은 지침이 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 하면 생각나는 것이 억지로 진 십자가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원치 않던 십자가를 지닌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의 종으로 사용하시는 신비한 일을 우리들이 경험하게 되죠.
왜 챔버스는 오늘 본문을 택해 구레네 사람 시몬의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오늘 이 말씀은 마가복음 15장 21절 말씀과 연결 지어 묵상해야 챔버스의 진위를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이게 똑같은 평행본문인데 알렉산드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시몬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마가복음을 읽고 있었던 초대기의 성도들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그 사람이구나'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십자가를 지었던 시몬의 가정을 당시 초대 교회의 신앙의 명문가로 만들어 주셨던 것이죠. 챔버스의 글을 조금 인용합니다.
불순종을 택할 경우 우리는 잠깐 불편한 상황을 피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는 근심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의 순종으로 인해 마음의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주께서 친히 돌보실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함으로 인해 발생될 결과에 대해 주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하지 마십시오.
챔버스의 가정도 그의 순종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듯했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의 가정, 가문을 세상에서 인정받는 가문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최고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이런 순종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면 그다음 일은 하나님이 책임이신다는 전적 믿음에서 우리의 순종이 오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 이 묵상에 도움이 되는 한 가지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팀 티보라고 하는 미식직구 선수를 여러분들이 아실 거예요. 팀티보는 필리핀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티보가 플로리다 대학 시절 쿼터백으로 미식축구를 할 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 있습니다. 눈 밑에 아이패치라고 하죠. 거기에 늘 그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하는 것을 새기고 경기를 했습니다. 사람들, 요한복음을 몰랐던 사람들, 신앙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보았고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런 말씀이었죠. 이 모습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도리어 조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의 승리는 우연이었다고 그의 쇼는 끝났다고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조소와 우려 그리고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2010년 덴버에 있는 미식 프로축구팀에 팀티보가 들어가게 됩니다. 프로 축구팀에서는 아이패치를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팀 티보는 중요한 순간에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 되면 한쪽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런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것이 팬들 사이에서 티보잉이라고 하는 말로 유명한 기도 자세로 알려지게 되었죠. 2013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사가 선정한 2013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선수로 팀티보가 선정이 됩니다. 뉴잉글랜드 페트리어트로 영입되었을 때 구단주는 로버트 크래프트라는 사람인데, 자신이 티보를 영입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티보의 감동적인 영성 때문이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온전히 쓰시도록 자신을 내어놓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한줄 노트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순종은 친히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합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순종으로 인해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 염려가 있다면 하나님께 맡겨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짧은 기도로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오늘 사람들을 만나 그냥 즐기고 왔습니다.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없어 모른 체하고 복만 빌어주고 왔습니다. 그래선 안 되는 줄 알지만 침묵하고 외면했습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게 아닌 줄을 알지만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침묵했습니다. 아니 실은 이것은 핑계입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상처받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계속 저를 좋아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부끄럽습니다. 아버지 용기를 주소서. 지혜를 주소서. 아멘.
출처 : 유튜브 김병삼 목사의 매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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